화설(話說) 대원(大元) 지정말(至正末)에 장원이라 하는 자 있었는데 벼슬이 겨우 한원(翰苑)에 있더니 원나라가 망하고 대명(大明)이 중흥(中興)하매 시절을 염려하여 태안주(泰安州)의 이릉산에 숨어 살았는데, 하루는 장공이 일몽(一夢)을 얻으매, 남전산(藍田山)의 신령이 이르시되, |
“시운(時運)이 불리하여 조만간(早晩間)에 큰 화(禍)가 있을 것이니 바삐 떠나라.” |
하고 간 데 없더라. 공이 깨어 그 부인더러 몽사(夢事)를 이르고 즉시 부인을 이끌어 옛길을 찾더니 문득 풍우가 일어나며 홍의(紅衣) 동자(童子)가 앞에 나아와 급히 빌며 말하기를 |
“소자의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렸사오니 부인은 구하여 주소서.” |
하니 부인이 크게 놀라 |
“선동의 급한 일은 무슨 일이며 우리 어찌 구하라 하느뇨?” |
동자는 발을 구르며 |
“소자는 동해 용왕의 셋째 아들이러니 남해왕이 되어 부부(夫婦)가 친영(親迎)하여 오다가 동해 호상(湖上)에서 남섬진주 요괴(妖怪)를 만나 용녀(龍女)를 앗아가려 함에 둘이 합력(合力)하여 싸우다가 용녀는 힘이 진(盡)하여 죽고 소자 또한 어린 연고(緣故)로 신통(神通)을 부리지 못하여 달아날새, 미처 수부(水府)로 들지 못하고 인세(人世)에 멀리 나오매 기력이 진하여 다시 달아날 곳이 없는지라. 바라건대 부인은 잠깐 입을 벌리시면 몸을 피하고 후세에 은혜를 갚으리이다.” |
하거늘 부인이 잠간 입을 벌리니 용자는 몸을 흔들어 붉은 기운이 되어 들거늘 부인이 삼키고 보니 홀연(忽然) 천지가 아득하며 광풍(狂風)이 일어나고 괴이한 소리가 진동하는지라 공의 부부가 급히 돌 틈에 숨었더니, 이윽고 바람이 그치고 일색(日色)이 청명(淸明)하거늘 겨우 길을 찾아 굴 밖에 나오니 이곳은 태안 땅 고당주 접경(接境)이더라. 비록 산협(山峽)이나 민호(民戶)가 부요(富饒)하고 인심이 순후(淳厚)하더라. 그 가운데 모사절사의(慕死節死義)하며 살신성명(殺身成名)하는 자가 많으니, 백성들이 의지 없는 사람을 붙들어 구할새 장공의 거지(擧止)가 단아(端雅)하고 언사(言辭)가 온공(溫恭)함을 보고 애중(愛重)히 여겨 혹 집터도 빌리고 혹 농업을 분작(分作)하며 자식 있는 자들은 다투어 수학(受學)하기를 원하니 이로 인하여 생계(生計) 유족(裕足)하니 호칭하기를 산인이라 하였다. |
이즈음 공이 사속(嗣續)이 없어 매양 슬퍼하더니, 일일은 꿈 하나를 얻으매 문득 천지가 혼흑(昏黑)하며 구름 속으로부터 청룡(靑龍)이 내려와 인갑(鱗甲)을 벗고 변하여 선비가 되어 앞에 나와 이르되 |
“자식의 급한 것을 구하여 주시니 은혜 난망(難忘)이라. 능히 갚을 바를 알지 못하더니 이에 옥제(玉帝)께서 조회(朝會)를 받으시고 천상천하(天上天下)의 원굴(寃屈)한 것을 살피실새, 남해 용왕의 필녀(畢女)는 나의 며느리인데, 저들이 신혼(新婚)하여 오다가 요괴에게 죽고 원혼이 옥제께 발원(發願)하였더니 옥제 금광으로 하여금 ‘쾌히 보응(報應)케 하라.’ 하실새, ‘용자(龍子)도 인세(人世)에 내어 보내어 미진(未盡)한 인연(因緣)을 다하라.’ 하시니 내 금광에게 청하여 그대 집에 정하였노라.” |
하고 간 데 없거늘, 깨어 부부가 서로 몽사(夢事)를 일러 암희(暗喜)하였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胎氣)가 있어 십 삭이 차매 일개 옥동을 생(生)하니 얼굴이 남전산에서 보던 선동과 같은지라. 비록 강보(襁褓)의 아이이나 용모가 웅위(雄偉)하고 기질(氣質)이 준일(俊逸)하니 이름을 해룡이라 하였고 자는 응천이라 하다. |
호사다마(好事多魔)는 고금(古今)의 상사(常事)라. |
이 때 천자가 하늘에서 명을 받으시니 해내(海內)가 안정치 못하여 혹은 위왕이라 하고 혹은 국왕이라 칭하며 남서로 노략하니 일경(一境)이 진동하여 피란하는 자 무수(無數)하였는데 장공이 그 가운데 섞이어 피난할 제 추병(追兵)이 정히 위급한지라 부부 서로 해룡을 둘러업고 달아나더니 운이 다하매 부인이 울며 말하기를 |
“아이를 보전코자 할진대 우리가 다 죽을 것이니 상공은 우리 모자를 잠깐 버리시고 피난하였다가 모자의 해골이나 거두어 주십시오.” |
하매 장공이 아내의 이 말을 듣고 차마 떠나지 못하여 서로 붙들고 통곡하더니 도적이 점점 가까이 따라 오는지라 처사 울며 |
“해룡을 버리고 가자.” |
하며 재촉하거늘 부인이 할 수 없이 길가에 앉히고 달래어 말하기를, |
“우리 잠깐 다녀 올 것이니 실과를 먹고 앉아 있으라.” |
하니 해룡이 울며 한가지로 가자 하니 장공이 좋은 말로 달래고 부인을 재촉하여 달아날 때 걸음마다 돌아보니 해룡이 부모를 부르며, |
“쉬 오라.” |
당부하는지라. 이 때 도적이 오다가 해룡을 보고 죽이려 하다가 그 중에 장삼이란 도적이 말리며, |
“어린 아이가 부모를 잃고 우는 것을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이려 하느뇨?” |
하고 업고 오다가 생각하되 |
‘내 위세(威勢)에 핍박(逼迫)하여 군오(軍伍)에 몰입하였으니 어찌 본심이리오. 또 이 아이의 상을 보니 귀히 될 기상이라. 이때를 타 달아나리라.” |
하고 도망하였는데 강남고군으로 달아나니라. |
이 때 장 처사 부부가 도망치다가 도로(道路)가 고요함을 보고 산에 올라 바라보니 해룡이 이미 없어졌으매 사면으로 찾되 종적(蹤迹)이 묘연(杳然)하여 부인은 가슴을 치고 방성(放聲) 대곡(大哭)하기를 |
“해룡을 아주 잃을 줄 알았더면 무슨 표시라도 했었다가 훗날 만날 때에 보람이 될 것을 창졸간(倉卒間)에 생각지 못하고 그냥들 도망해 왔으니 어디서 만나본들 알 수 있으랴.” |
하며 더욱 울어 마지 않더라. 장 처사 위로하며, |
“아이는 등에 붉은 사마귀 칠성이 있음에 그것으로 신물이 될 것이니 부인은 염려마소.” |
하고 부부가 서로 슬픔을 머금고 두루 찾아보았으나 마침 조나라 장수 위세기에게 잡히는 바 되어 장수의 막하(幕下)에 들어가니 위세기가 처사의 뛰어난 기상과 웅위한 거취를 보고 아껴 그 결박을 끄르게 하고 당중(堂中)에 올라 오라 하여 서로 인사를 교환하니 지기(志氣)가 상합(相合)하고 언사 또한 온공하므로 원이 즉시 참모(參謀)로 하였더니 참모의 헌책(獻策)으로 연경(連境) 누천(累千) 리를 얻음에 이로 인하여 남서의 작은 성지(城地)를 가려 주어 한가히 쉬라 하니 처사 부부가 노양현으로 가게 되니라. 이곳은 서촉지계(西蜀之界)니 산천이 험준하매 백성이 병혁(兵革)을 모르는지라. 처사 도임(到任)한 후 정사(政事)가 공평하매 일경(一境)이 안업(安業)하고 각처의 즐겨하는 소리가 원근(遠近)에 들리더라. |
이 때 성남 조계촌에 김삼랑이란 사람이 있으니 호협(豪俠) 방탕(放蕩)하여 그의 처 막씨의 얼굴이 곱지 못하므로 조가의 여자를 취하여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곳 백성이 되니 막씨는 조금도 서러워하는 일이 없고 늙은 어미를 봉양할새 집안이 빈한(貧寒)하므로 남의 고공(雇工)이 되어 조석(朝夕)을 나누어 먹더니, 그의 어머니가 죽으매 막씨는 주야로 애통하고 장사(葬事)를 극진히 차려 선산(先山)에 안장(安葬)한 후 앞에 초막(草幕)을 짓고 밤이면 수직(守直)하여 십여 년을 한결같이 하니 천고에 효부(孝婦) 많으나 막씨에게 미칠 이 없더라. |
일일은 막씨가 초막에서 한 꿈을 얻으니 몸이 공중에 올라 한 곳에 이르니 산천이 수려하여 짐짓 아름다운 세계라 막씨가 한번 두루 돌아보니 백발 노옹이 사방을 응하여 앉았으니 막씨 감히 나가지 못하고 주저하더니 한 동자가 나와 말하기를, |
“우리 사부께서 옥제의 명을 받자와 그대에게 전할 것이니 바삐 나아가 뵈오라.” |
하므로 막씨가 나아가 뵈오니 노옹이 각각 방위를 정하여 앉았다가 막씨를 보고 |
“그대의 대절(大節)과 지효(至孝)를 옥제께서 아시고 극진히 표창하라 하시매 자식을 점지코자 하였더니 대장부 죽은지라 옥제께 이 연유를 주달하였더니 또 하교하사 그러면 좋을 대로 하라 하시기로 마침 남해 용녀와 동해 용자가 일찍이 횡사(橫死)하여 옥제께 보수(報讎)하기를 발원(發願)하였은즉 옥제가 우리로 하여금 선처하라 하시기로 용자는 마침 좋은 곳이 있어 구처(求處)하였으되 용녀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였더니 이제 그대를 주나니 십육 년 후에 그 얼굴을 보리니 이제 자세히 보았다가 후일 차등(差等)이 없게 하라.” |
하고 공중을 향하여 용녀를 부르니 이윽고 선녀가 내려와 서거늘 막씨가 그를 보니 천고에 드문 여인이더라. 홍의(紅衣) 입은 선관이 이르되 |
“나는 차지할 것이 없으니 너로 하여금 춘하추동을 임의로 보내게 하리라.” |
하고 소매 안으로부터 오색 명주(明紬)를 내어 주며 |
“십육 년 후에 찾을 때가 있을 것이니 도로 보내라.” |
하고 청의 선관은 부채를 주며 |
“이것을 가지면 천리라도 하루에 갈 것이니 쓰고 능히 전하라.” |
하고 백의(白衣) 선관은 붉은 부채(紅扇)를 주며 |
“이것을 가지면 바람과 안개를 부리나니 이후에 찾거든 전하라.” |
하고 또 흑의(黑衣) 선관이 |
“나는 줄 것이 없으니 힘을 주리라.” |
하고 검은 기를 주거늘 선녀가 받아 가지고 막씨를 한 번 돌아보며 공중으로 가려 하더니 문득 학의 울음소리가 나며 황의(黃衣) 선관이 내려와 좌(座)에 앉으며 말하기를 |
“막씨의 표창(表彰)은 어찌 하였으며 용녀의 보응(報應)을 어찌하고자 하였느뇨?” |
선관이 대답하기를 |
“여차여차 점지하였노라.” |
그 황의 선관이 눈썹을 찡그리며 |
“그리하면 이름 없는 자식이 될 것이요 효부의 바라는 바 아니라. 여차여차 하였으면 하늘의 뜻을 세상이 것이오. 모녀간의 윤기(倫紀)를 알리라.” |
하니 모두 옳다 하고 각각 채운(彩雲)을 타고 흩어지거늘 막씨가 놀라 돌아서서 사면을 바로보매 선인의 자취가 운무(雲霧) 중에 사라지고 만장(萬丈) 폭포(瀑布)에 물 흐르는 소리뿐이라. 무료(無聊)히 돌아올 때 홀연(忽然)히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몽사를 기록할 때 삼랑이 죽은 줄 알고 허위를 배설하고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
막씨가 하루는 슬픔을 머금고 앉아 있을 때 홀연히 일진(一陣) 음풍(陰風)이 일어나며 초막 앞에 한 사람이 서 있거늘 막씨가 자세히 보니 그가 곧 삼랑이라 놀라며 묻기를 |
“장부 나를 버리고 간 지가 거의 수십 년이라. 간 곳을 몰라 이러하였더니 신령이 이르기를 난중에 죽었다 하매 몽사를 얻을 것이 아니로되 내 역력히 들은 고로 이에 영연(靈筵)을 배설하였더니 알지 못할게라. 살아서 오시는가. 어찌 이 깊은 밤에 거취가 분명하지 못함은 어쩐 일인고?” |
삼랑이 목이 메어 하는 말이 |
“내 과연 그대 뜻을 모르고 탕자의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그릇 그대를 박대한 죄로 천앙(天殃)을 받아 과연 난중에 죽으매 후세에 가도 또한 죄인이라. 비록 깨달으나 미치지 못하고 귀신의 유(類)에도 참여치 못하고 음풍이 되어 다니더니 그대 나를 위하여 영향이 지극하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비록 유명(幽明)이 다르나 그 감격함을 사례코자 하노라.” |
하고 생시와 다름없이 수작(酬酌)하고 돌아간 후 자주 왕래하여 몽중(夢中)의 친밀함이 있어 막씨가 문득 복병(腹病)이 있어 마치 태상(胎上)에 아이 놀 듯하며 점점 크게 자라거늘 심히 괴이히 여겨 남이 알까 근심하더니, 십 삭이 미쳐서는 산점(産漸)이 있어 여막에 엎드렸더니 해복(解腹)하고 돌아보니 아이는 아니요 금방울 같은지라. 금광(金光)이 찬란하거늘 막씨 크게 놀라며 괴이히 여기고 손으로 누르되 터지지 아니하고, 돌로 깨쳐도 깨지지 아니하거늘, 다시 집어다가 멀리 버리고 돌아오니 방울이 굴러 따라오는지라, 더욱 신기하여 집어다가 깊은 물에 던지고 돌아오니 또 따라오는지라 또 다시 집어다 단단히 넣으니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막씨를 보고 또 따라오는지라. 막씨가 내심으로 헤아리되, |
“내 팔자가 기구하여 이 같은 괴물을 만나 후일에 반드시 큰일이 나리로다.” |
하고, 불을 때며 방울을 아궁이에 넣고 있었더니 조금도 기미가 없으매, 막씨는 크게 기뻐하여 아궁이를 닷새 후에 헤쳐 보니 방울이 상하기는 고사하고 빛이 더욱 생생하고 향취도 진동하거늘 막씨는 할 수 없어 두고 보니 밤이면 품속에서도 자고 낮이면 굴러다니며, 혹 내려앉은 새도 잡고 혹은 나무에 올라 실과도 따다가 앞에 놓으니, 막씨가 자세히 보니 그 속의 실같은 것으로 온갖 것을 다 묻혀 오거늘 그 털이 단단하여 무시하지 못할 만하더라. 이 때 막씨가 추위를 당하매, 방울이 품속에 들면 춥지 아니하더라. |
하루는 막씨가 한데서 방아질을 하여 주고 저녁에 돌아오매, 방울이 굴러 막씨께로 내달아 반기는 듯하니, 막씨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방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이 덥고 방울이 빛을 내니 밝기가 흡사하더라. 막씨가 기이히 여겨 남이 알까 걱정하여 낮이면 여막 속에 두고 밤이면 품속에서 재우더니 방울이 점점 자라매 산에 오르기를 평지같이 하고 마른 데 진 데 없이 굴러 다니되 흙이 몸에 묻지 아니하더라. |
이러구러 자연히 오래되매 빛이 더욱 찬란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자연히 알고 와서 구경코자 하여 문이 메어 들어와 집어 보거늘 흑 남자가 집으려면 땅에 박히고 떨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 몸이 마치 불 같아서 손을 댈 길이 없었고, 더욱이 신통히 여기어 마침내 집어 보는 이가 없더라. |
동리에 사는 무손이라는 사람이 있어 가산이 부유하되 무지한 욕심과 불칙한 거동이 인륜(人倫)에 벗어난 놈이라, 막씨의 방울을 도적하려고 막씨가 자는 틈을 타서 가만히 방울을 훔쳐서 집에 가지고 돌아가 처자에게 자랑하고 감추었더니 그 날 밤에 난데없는 불이 나서 온 집안을 둘렀는데, 무손이 크게 놀라 미처 옷을 입지 못하고 발가벗은 채 내다보니 불꽃이 충천하고 바람은 불을 돕는지라 당황하여 어찌할 길 없어서 재물과 세간을 다 재로 만들더라. |
무손의 부처는 실성하여 통곡하며 그 중에서도 방울을 잊지 못하여 불붙는 곳에서 가재를 헤치고 방울을 찾더니 재 속으로부터 방울이 뛰어 내달아 무손 처의 치마에 싸이거늘 그것을 집어내더라. 그날 밤에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해 하니 무손이 말하기를, |
“이 같은 더위에 추워하느뇨?” |
이 방울이 전에는 그리 덥더니 오늘은 차갑기가 어름 같아서 아무리 떼이려 하여도 살에 박인 듯하여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거늘, 무손이 내달아 잡아떼려고 손을 대고자 하니 더욱 불이 성하는 듯하여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처를 꾸짖어 말하기를, |
“방울이 끓는 듯한데 어찌 차다고 하느냐?” |
하고, 서로 다투거늘, 방울은 참 조화를 가졌는지라 한편은 차기 얼음 같고 한편은 덥기가 불 같아서 변화가 이러한 줄을 모르다가 그제야 깨달아 하는 말이, |
“우리 무상하여 하늘이 내신 보물을 모르고 도적하여 왔더니 도리어 이 지경을 당하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
하고, 막씨에게 가서 빌어 보리라 하고 그 날 밤에 막씨 초막에 가니 이 때 막씨가 방울을 잃고 울며 앉았더니 무손의 처가 와서 비는 것이더라. 그러나 무심은 도리어 원심을 머금고 고을에 들어가 지현(知縣)에게 방울의 신통함을 말하고 또 요기로움을 고하니 관원을 파견하여 잡아오라 했더니, 이윽고 돌아와 고하기를. |
“소인이 잡으려고 한즉 이리 미끈 저리 미끈하여 잡지 못하고 왔사옵니다.” |
하니, 지현이 이로 인하여 막씨를 잡아 오라고 하더라. 포졸이 대거하여 막씨를 잡아 오니. 그제야 방울이 굴러오는 것이더라. 지현이 자세히 보니 방울이 금광(金光)이 찬란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매. 한편 괴이히 여기고 신기하게도 여겨 나졸로 하여금 철퇴를 가지고 깨치라 명하니. 군사가 힘을 다하여 치는 것이더라. 방울이 망 속으로 들어 가다가 도로 뛰어나오는데 할 수 없어 이번에는 다시 도로 집어다가 돌에다 놓고 도끼로 짖찌니 방울이 점점 자라. 크기가 길이 넘는 것이 되더라. 이에 지현이 크게 노하여 보검(寶劍)을 주며 말하기를, |
“이 보검을 천하무당(天下無當)인지라. 사람을 베이되, 칼날에 피도 묻지 아니하니 이 칼로 베일지니라.” |
하니. 군사가 그 명령을 듣고 한번 들어 힘껏 치니. 두 조각으로 나며 서로 부딪쳐 굴렀고, 그래서 다시금 연거푸 치니 치는 족족 뜰에 가득한 것이 모두 방울뿐이더라. 저마다 크게 놀란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지현은 더욱 노하여 기름을 끓이고 넣으라 하니, 이에 부하 포졸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기름가마에 불을 지펴 방울을 집어 넣으니 과연 방울이 차차 작아지는 것이더라. 이에 여러 사람이며 장공들이 대단히 기꺼워하였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었으며, 방울은 더욱더욱 작아지며 대추씨만 하여지더니 기름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가라앉거늘 건지려고 나아가서 보니 그렇게 끓던 기름이 엉기어 쇠와 같이 되었으매, 지현이 한편 괴이히 여기고 한편 크게 노하여 막씨를 하옥(下獄)하라 하고 내당에 들어가니 부인이 바삐 끌어 말하기를. |
“오늘 이 물건을 보니 하늘이 내신 것이라. 막씨를 방면(放免)하고 후일을 보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
지현이 냉소(冷笑)하되, |
“요물(妖物)이 신통하다 하나 어찌 저만한 것을 제어치 못해서 근심하리요.” |
부인이 재삼 말하되. 곧이 듣지 않고 이 날 밤에 자더니 방울이 가마에 들었다가 밤이 된 후에야 가마를 뚫고 나와 바로 상방 아궁이로 들어 가니라. 전날 밤에 공이 자다가 크게 소리 지르며 일어나거늘 부인이 놀라 붙들고 묻되. |
“상공은 어찌 이러시나뇨?” |
공이 말하되, |
“자리가 더웁기 불같으며 데어 벗어질 듯하다.” |
하고, 부인의 자리에 바꾸어 누웠더니 또한 전과같이 더운지라 일시도 견딜 길이 없어 외현으로 나오니 방안이 마치 불에 든 것과 같은지라 또 다시 견디지 못하여 밖으로 방황하다가 날이 새니라. 종일 피난하다가 또 저녁밥을 대하매, 그때는 덥지 아니하고 차기 어름 같은지라 인하여 자려고 한즉 또 여전하더라. 이러하기를 삼사일에 미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여 거의 앓게 되었으매, 그제야 방울의 조화인 줄 알고 가마에 가 보니 가마 밑이 뚫어져서 방울은 간데 없으매, 즉시 나졸을 명하여 옥중에 가보고 오라 하였더니 회보하되, |
“방울이 옥문 밑을 뚫고 출입하며, 혹 실과도 물고 들어가기로, 문틈으로 살펴본즉 오색 채운이 옥중에 둘러 있기로 사람은 볼 길이 없더이다.” |
하더라.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방면함을 재차 권고하였는데, 지현이 그제야 깨닫고 즉시 막씨를 방면하니, 그제야 침식이 여전하니라. 또한 막씨의 효행을 듣고, 지현 부부는 크게 뉘우쳐 그 초막을 헐고 크게 집을 짓고 또 잡인을 들어가지 못하게 월봉을 주어 막씨의 일생을 편안하게 하더라. |
이 때 공이 뇌양에 온 후로 몸이 편안하나 주야로 해룡을 생각하며 부인과 더불어 슬퍼함을 금치 못하더라. 부인이 이로 인하여 침석(枕席)에 위독하여 백약(百藥)이 무효하매 공이 주야로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고 약을 맛보아 권하더니, 하루는 부인이 장공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
“내 팔자가 기박하여 한낱 자식을 두었다가 난리 속에서 잃고 지금까지 명을 보존함을 요행으로 생전에 만나 볼까 하였더니, 십여 년이 지나도록 사생(死生)과 존망(存亡)을 알지 못하고 병이 몸속에 들어 명이 오늘에 달려 있소이다. 구천(九泉)에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겠사옵니다. 바라건대 상공은 길이 보중(保重)하옵시고 혹시 해룡을 상봉하여 영광을 보옵소서.” |
하고, 이내 숨이 지니 공이 하늘이 무너진 듯한 슬픔을 느껴 기절하여 쓰러지매, 좌우에서 부축하여 구호하더라. 이 때 홀연히 금광(金光)이 찬란한 가운데로 쫓아 방울이 문득 밖에서 굴러 들어와 부인의 시체 앞에 앉기에. 모두 울음을 그치고 보니 풀잎 같은 것을 물어다가 놓고 가는 것이더라. 모두 괴이하게 여기어 집어 보니 나뭇잎 가운데다가 가늘게 쓰였으되, '보은초(報恩草)'라 하였으매, 보은초가 무엇인고 공이 내심으로 헤아려 생각하되, '막씨가 보은하도다'하고, 크게 기뻐하여 부인의 입에 넣으니, 한 식경 후에 부인이 몸을 운동하고 돌아눕거늘 좌우 수족을 주무르니 그제야 숨을 내어 쉬는지라, 공이 기꺼워하여 문병하니라. 부인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
“자고 나매 정신이 생생하여졌사옵니다.” |
하더라. 공이 크게 기뻐하여 방울의 수말을 이야기하고 기뻐함을 마지 아니하매, 이후로부터 부인의 병세가 점점 나아지더니 부인이 하례하고자 하여 친히 막씨가 가져온 방울의 조화로 환생하였던 은혜를 만만치사하고 결의형제(結義兄弟)를 하였더니, 그 후로는 방울이 굴러 부인 앞으로 오거늘 공의 부부가 사랑하여 놓지 아니하니, 방울이 아는 듯이 이리 안기며 저리 품기어 영민함이 사람의 뜻대로 하니. 이름지어. ‘금령(金鈴)’이라 하니라. |
금령이 밤이면 품속에 들어 자고, 낮이면 제 집에 가니 친 골육(骨肉)과 같았고, 하루는 금령이 나아가 무엇을 물어다 놓거늘, 공의 부부 괴이히 여겨 보니, 한 개의 족자더라. 그 족자에 그렸으되 한 아이가 길가에서 우는데 사면으로 도적이 쫓아오고 부부 양인은 아이를 버리고 가는 고로 그 아이가 돌아보는 형상이오 또 도적 가운데의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업고 촌가로 가늘 형상이었으매,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
“이는 분명 우리가 해룡을 버리고 떠나온 형상이라.” |
하고, 공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거늘 부인이 이 말을 듣고 또한 울며 말하기를, |
“비록 그러나, 어찌 사생을 알리 있소?” |
사람이 없고 촌 가운데로 들어가는 형상이 생각건댄 아무나 기르려고 업어 갔나 하거니와 금령이 신통하여 우리의 슬퍼함을 보고 저 있는 곳을 알게 함이니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족자를 침상에 걸고 슬퍼하지 않을 때가 없더라. 하루는 금령이 홀연히 간 곳이 없으매, 막씨가 울며 불며 공에게 나와 금방울의 간 곳이 없음을 말하니, 공의 부부가 크게 놀라 또한 슬퍼해 마지 아니하더라. |
그것은 그렇다 해놓고 그 때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가 해내(海內)를 진정시켜 놓으니, 그는 치국(治國)의 성군(聖君)이라 세금을 감하여 형벌을 감하시었으며, 이에 백성이 즐거워하여 격양가를 화답하더라. |
황후께서 늦게야 따님 한 분을 얻으시니 색덕(色德)이 구비하여 만고 무쌍이었으매, 점점 자라매, 효행이 뛰어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재조와 덕망이 겸비하니라. 황제와 황후가 어루만지시며 장중 보옥(掌中寶玉)같이 애중(愛重)하시어, 궁호(宮號)를 ‘금선공주’라 이름하니라. |
이때가 춘삼월 보름이었고, 황후가 공주와 시녀를 데리시고 월색을 따라 후원에 이르시니, 백화만발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하여, 달무리 아래 밤이슬은 옷에 젖어들고 자는 새들은 다투어 우는 것이더라. 섬섬옥수(纖纖玉手)를 이끌고 금련보(金蓮步)를 옮겨 서쪽 정원에 오르사 두루 구경하시니, 홀연 서남쪽 땅에서 한 떼의 구름이 일며 광풍이 크게 일어 한 개의 괴이한 물건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매, 모두 엎어져 기절하니 이윽고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이 명랑하더라.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공주와 시녀들이 간 데 없으므로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두루 찾으매 형적(形迹)이 없더라. 즉시 상께 고하니 상이 또한 크게 놀라 즉시 어림군(御臨軍)을 조발하사 궁궐 안을 샅샅이 찾으시니, 종적이 묘연(杳然)하였으매, 황후가 통곡하여 말하기를, |
“이런 일이 천고(千古)에 또 있으리오.” |
하시고,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시고 주야로 애통함을 마지 아니하시니 상께서도 또한 어찌할 줄을 모르사, 이에 방(榜)을 붙여, |
“공주를 찾아 바치는 자 있으면 천하를 반분(半分)하고 부귀영화를 함께 하리라.” |
하더니라. |
일찍이 장삼이 해룡을 업고 달아나 여러 날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그의 아내 변씨가 내달아 반기며, |
“낭군의 사생을 알지 못하여 주야(晝夜)로 침식(寢食)이 불편하더니, 간밤에 꿈 하나를 얻으니 큰 용을 타고 들어오므로 생각건댄 불행이 있는가 하였더니 오늘날 살아 다시 만날 줄 어이 뜻하였으리오.” |
하고, 해룡을 가리켜 말하되, |
“이 아이를 어디서 얻어 왔느뇨?” |
장삼이 여차여차하여 얻었노라 하니, 변씨가 기꺼워하는 체하나 심중에 과히 반기는 기색이 없더라. 변씨가 늦도록 자식이 없다가 우연히 태기가 있어 십 삭이 되매, 아들을 낳으니 장삼이 크게 기뻐하여 이름을 소룡(小龍)이라 하였고, 소룡이 점점 자라 칠 세가 되매, 크기는 하였으나 어찌 해룡의 늠름한 풍도며 넓은 도량을 따라갈 수 있으리오. 둘이 글을 배우매 해룡은 한 자를 알면 열 자를 깨우치는지라 열 살 미만에 하나의 문장가가 되더라, 장삼은 본시 어진 사람인지라 해룡을 친자식같이 사랑하매 변씨가 매양 시기하여 마지 않으니 장삼이 매양 변씨의 어질지 못함을 한(恨)할 뿐이더라. |
해룡이 점점 자라 열세 살이 되매 그 영풍(英風) 준모(俊貌)한함에 태양이 빛을 잃을 만하며 헌헌(軒軒)한 도량은 창해를 뒤치는 듯하고 맑고 빼어남이 어찌 범용(凡庸)한 아이와 비교하리오. |
이 때 변씨의 시기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여 백 가지로 모해하며 내치려 하되 장삼은 듣지 아니하고 더욱 사랑하여 일시도 떠나지 아니하여 애지중지(愛之重之)하니, 이러함으로 해룡은 몸을 보전하여 공순하며 장삼을 지극히 섬기니, 이웃과 친척들이 칭찬치 않는 이 없더라. |
옛날로부터 영웅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몸이 먼저 곤(困)함은 천금의 상사(常事)라. 장삼이 졸연(猝然)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니 생이 지극 지성으로 구호하되 조금도 차도가 없고 점점 날로 더하여 장삼이 마침내 일어나지 못할 줄 알고 생의 손을 잡고 눈물지으며, |
“내 명은 오늘뿐이라. 어찌 천륜지정을 속이리오, 내 너를 난중(亂中)에 얻음에 기골이 비상하거늘 업고 도망하여 문호를 빛낼까 하였더니 불행히 죽게 되니 어찌 눈을 감으며 너를 잊으리오. 변씨는 어질지 못함에 나 죽은 후에 반드시 너를 해코자 하리니, 보신지책(保身之策)은 네게 있나니 삼가 조심하라. 또한 대장부가 사소한 혐의(嫌疑)를 두지 아니하나니 소룡이 비록 불초(不肖)하나 나의 기출(己出)이니 바라건댄 거두어 주면 내 지하에 돌아갈지라도 여한이 없으리라” |
하고, 또 변씨 모자를 불러 앉히고, |
“내 명은 오늘뿐이라, 죽은 후에라도 해룡을 각별 무애(撫愛)하여 소룡과 다름없이 대하라. 이 아이는 후일 귀히 될 것이니 길이 영화를 보리니, 오늘 나의 유언(遺言)을 저버리지 말라.” |
하고, 말을 마치며 죽으니, 해룡이 애해 하기를 마지 아니하매 보는 사람이 감탄치 않을 이가 없더라. 상례(喪禮)를 갖추어 선산에 안장하고 돌아오니 일신을 의지할 곳 없는지라 주야로 애통해 마지 않더니 |
이 때 변씨는 해룡을 박대함이 나날이 더하여 의복과 음식을 제 때에 주지 아니하고 낮이면 밭 갈기와 논 매기며 소도 먹이며 나무하기를 한때도 놀리지 아니하고 주야로 보채니 해룡은 더욱 공근(恭勤)하여 조금도 회피(回避)함이 없으매 자연히 용모가 초췌하고 주림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더라. |
이 때가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 변씨는 소룡과 더불어 더운 방에서 자고 해룡은 방아질만 하라 하니, 해룡이 할 수 없어 밤이 새도록 방아질 하니 홑것만 입은 아이가 어찌 기한(飢寒)을 견디리오. 추움을 견디지 못하여 자기 방에 들어가 쉬려 하였으나 설한풍(雪寒風)은 들이치고 덮을 것은 없는지라. 몸을 옹송그려 엎디었더니, 홀연히 방속이 밝기가 대낮과 같은지라 여름과 같이 더워 온몸에 땀이 나거늘, 생이 한편 놀라고 한편 괴이히 여겨 즉시 일어나 자세히 살펴보니 오히려 동녘이 아직 채 트이지 않았는데 백설이 뜰에 가득하더라. |
방앗간에 나아가 보니 밤에 못다 찧은 것이 다 찧어 그릇에 담겨 있거늘, 크게 의심하고 괴이히 여기어 방으로 돌아오니 전과 같이 밝고 더운지라, 아무리 생각하여도 의심이 없지 못하여 두루 살피니 침상에 이전에 없던 북 만한 방울 같은 것이 놓였으매, 생이 잡으려 한즉 이리 미끈 달아나고 저리 미끈 달아나니, 요리 구르고 저리 굴러 잡히지 아니하는지라, 또한 놀라고 신통히 여겨 자세히 보니 금빛이 방안에 가득하고 움직일 때마다 향취가 나는지라, 생이 생각하매 이것이 반드시 무심치 아니할지라 내 두고 보리라 하여 잠을 좀 늦도록 자매, 이 때 변씨 모자가 추워 잠을 잘 수 없어 떨며 앉았다가, 날이 밝으매 나아가 보니 적설(積雪)이 집을 두루 덮었는데 한풍(寒風)은 얼굴을 깎는 듯하여 사람의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지라 변씨는 생각하되, |
“해룡이 얼어 죽었으리라.” |
생각하고 생을 부르니 대답이 없더라. 아마도 죽었나 보다 하고 눈(雪)을 헤치고 나와 문틈으로 내다보니 생이 벌거 벗고 누워 잠들어 깨지 않았거늘 놀라 깨우려 하다가 자세히 보니 천상천하(天上天下)에 흰 눈이 가득하되 오직 해룡의 방 위에는 일점(一點)의 눈이 없고 검은 기운이 연기같이 일어나니 이 어찌된 일이냐? 이 때 변씨가 크게 놀라 소룡에게 말하기를, |
“참 내 하도 이상하기에 거동을 보자 하고 나왔노라.” |
하더니, 해룡이 들어와 변씨에게 문후(問候)한 후에 비를 들고 눈을 쓸려 함에 홀연히 일진광풍(一陣狂風)이 일어나며 반시간이 못 되어 눈을 쓸어 버리고 광풍이 그치는 것이었으니, 해룡은 이미 짐작하되 변씨는 더욱 신통히 여기어 마음에 생각하되 해룡이 분명 요술을 부리어 사람을 속이는도다. |
만약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화를 입으리라 하고 아무쪼록 죽여 없앨 의사를 내어 틈을 얻어 해할 묘책을 생각다가 한 계교를 얻고 해룡을 불러 이르기를, |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매, 가산이 점점 탕진하여 형편이 없음을 너도 보아 아는 바라, 우리 집의 전장이 구호동에 있더니 요즘에는 호환(虎患)이 자주 있어 사람을 상하기로, 폐농(廢農)된지가 아마 수십 년이 된지라, 이제 그 땅을 다 일구면 너를 장가도 들이고 우리도 또한 네 덕에 좋이 잘 살면 어찌 아니 기쁘리오마는 너를 위지(危地)에 보내면 행여 후회 있을까 저어하노라.” |
해룡이 흔연히 허락하고 이에 쟁기를 수습(收拾)하여 가지고 가려 하거늘, 번씨가 짐짓 말리는 체 하니 생이 웃고 말하기를, |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니 어찌 짐승에게 해를 보리오.” |
하고, 표연(飄然)히 떠나가니 변씨가 밖에 나와 말하기를, |
“속히 잘 다녀 오라.” |
하고, 당부하더라, 해룡이 대답하고 구호동에 들어가니 사면이 절벽이오 그 사이에 적은 길이 있는데 초목이 가장 무성하였으매, 등라(藤蘿)를 붙들고 들어가니 다만 호표(虎豹) 시랑(豺狼)의 자취뿐이요 인적은 아주 없었으니, 해룡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옷을 벗고 잠깐 쉬려니 날이 서산에 저물고자 하거늘 밭을 두어 이랑 갈 때 홀연히 바람이 일고 모래가 날리며 문득 산상으로부터 이마가 흰 갈범이 주홍(朱紅) 같은 입을 벌리고 달려들매, 해룡이 정신을 진정하여 대항코자 할 때, 서편에서 또다시 큰 호랑이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드는 것이니, 해룡이 정히 위태하더라. |
이 때 홀연히 등뒤로부터 금방울이 내달아 한 번씩 받아 버리니 그 범이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거늘 방울이 나는 듯이 연하여 받으나, 두 범이 모두 거꾸러지는 것이었으니, 해룡이 달려들어 두 범을 죽이고 본즉 방울이 번개같이 굴러다니며 한 시각이 되지 못하여 그 넓은 밭을 다 갈더라. |
생이 크게 기특히 여기어 금방울에게 무수히 치사하고 이미 죽은 범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오며 돌아보니, 금령이 간 곳이 없으매, 이때에 변씨는 해룡을 구호동에 보내 놓고, |
“제 어찌 살아 돌아오리오.” |
하고 들며나며 매우 기뻐하더니, 문득 밖에 소리가 나며 사람들이 요란히 떠드는 소리가 들리므로 변씨가 나가보니 생이 큰 범 두 마리를 이끌고 왔던 것이라, 변씨는 크게 놀라, |
“네가 무사히 다녀왔구나?” |
하고, 칭찬하며 또한 큰 범 잡아 옴을 기꺼워하는 체하며 일찍 쉬라 하더라. |
생이 감사하고 이에 제 방으로 들어가니 방울이 먼저 와서 있더라. 이에 변씨가 소룡과 더불어 죽은 범을 가지고 관가에 들어가니 지현이 보고 크게 놀라, |
“네 저런 큰 범을 어디서 잡았느뇨?” |
변씨가 대답하되, |
“마침 호랑이 덫을 놓아 잡아 왔나이다.” |
지현이 칭찬하고 즉시 돈 십 관을 내어 상금을 주니, 변씨가 받아 가지고 돌아올 대 소룡에게 당부하여 말하기를, |
“행여나 이런 말은 내지 마라.” |
하고, 빨리 돌아오니 동녘이 아직 밝지 아니하였으니. 그때 바로 오능령이란 고개를 넘어오는데 문득 한 떼의 강도들이 내달아 시비(是非) 곡직(曲直) 묻지 아니하고 변씨 모자를 잡아다가 나무 끝에다 높이 매달아 놓고 가진 돈이며 의복을 벗겨 가지고 달아나는 것이매, 변씨가 벌거벗고 알몸으로 나무에 매달리어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쓰나 어찌 벗어날 수 있으리오. |
이때 생이 잠을 깨어 들어와 보니 변씨와 소룡이 없고. 두루 찾아보니 잡아온 호랑이조차 없어 이에 크게 놀라 두루두루 찾았더라. 길에 왕래하는 사람이 서로 말하되, |
“어떤 도적이 사람을 벌거벗겨 나무에 높이 달아매었더라.” |
하니, 해룡이 의아하여 바삐 가서 보니 변씨 모자(母子)가 벌거벗고 나무에 높이 매달려 있는지라. 나무에 올라가 끌어내려 업고 돌아오니라. |
이 때 금령의 신통(神通)이 무량하여 생이 더욱 여름철을 당하면 서늘케 하고 추워하면 덥게 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없이하여 주니, 생이 마음을 금령에게 붙여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 때 소룡이 나가 놀다가 살인(殺人)하고 들어와서 이르거늘, 변씨가 크게 놀라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날랜 포교들이 풍우같이 달려들어 소룡을 잡아가려 하니 변씨가 소룡을 감추고 이에 내달아 해룡을 가르켜 말하기를, |
“네가 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르는 체 하여 허물을 어린 동생에게 미루느뇨?” |
하고, 발악이 무쌍하더라. |
해룡이 생각하되, 내가 내어 주면 소룡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저는 아깝지 아니하나 공의 후사(後嗣)가 그칠까 저어하여 차마 어찌하리오, 내 죽어 혼이라도 양육(養育)하던 은혜를 갚고자 하나 공의 임종(臨終) 시(時)의 유언(遺言)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이에 내달아 말하기를, |
“살인한 사람은 곧 나이며, 저 소룡은 애매하다.” |
하니, 차사 등이 다시 묻지 아니하고 해룡을 잡아다가 관청의 뜰에 꿇리고 다짐을 두라 하더라. |
해룡이 혼연히 다짐을 두니 이대로 문서를 만들고 큰칼을 씌워 옥에 집어넣으니, 온몸에 금광이 둘러싸여 있더라, 지현이 보고 괴이히 여기어 밤에 사람으로 하여금 |
“옥중에 가서 보고 오라.” |
하니 이윽고 돌아와 보고하되, |
“죄인들이 있는 곳은 어두워 보이지 아니하고 해룡이 있는데는 화광과 같은 것이 비치어 밝으므로 자세히 본즉 해룡이 비록 칼을 쓰고 옥중에 갇혀 있으나, 비단 이불을 덮고 자더이다.” |
하니, 지현이 이 말을 듣고 신기히 여기어 각별히 살피더니 대저 이 고을 법은 살인 죄인을 닷새에 한 번씩 중형으로 다스리어 가두는 법이라, 그러므로 닷새만에 모든 죄인을 내어다가 각각 중형을 더하고 해룡은 나중에 처치하려고 하더니, 이때 지현이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음에 사랑이 그지없었는데, 그 해에 세 살이더라. 장중의 보옥(寶玉)과 같이 애중(愛重)하여 손밖에 내어놓지 아니하더니 이날 마침 지현이 아이를 앞에 앉히우고 매를 치는데, 형장이 내려치는 족족 그 아이가 간간이 울며 기절을 하더라. |
지현이 그 거동을 보고 황황하며 형장을 그만 그치라 한즉, 그 아이는 여전히 웃고 노는 것이더라. 지현이 크게 겁내어 의심하며 생이 쓰던 칼을 아주 벗기며 헐하게 가두어 감히 치지 못하고 두었더니 이러구러 수삭(數朔)이 지났으매, 겨울이 되었고, 변씨가 해룡의 조석(朝夕)을 이어 주지 아니하여도 조금도 주려하는 빛이 없으매, 하루는 지현이 그 부인과 더불어 아이를 앞에 누이고 자다가 문득 깨어보니 아이가 간데 없더라. |
내외는 깜짝 놀라 사방으로 찾았으나 끝내 종적이 없기로 지현과 부인이 창황 망조(罔措)하여 천지를 부르며 정신 나간 사람같이 되어 방방곡곡(坊坊曲曲)에 사람을 놓아 찾더라. 문득 옥졸이 급히 들어와서 고하되. |
“옥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나니 가장 괴이히 여기옵니다.” |
하고, 말하니, 지현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전지도지(顚之倒之) 옥중(獄中)에 나아가 보니, 자기 아이가 해룡의 앞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지현이 급히 달려가 아이를 안고 돌아오며 하는 말이, |
“요인(妖人) 해룡이 극히 흉악무도한 놈이니, 이놈을 묻지 말고 쳐죽이라.” |
하고, 호령이 서릿발과 같더라. 형졸들이 영을 받고 큰 대를 잡아 힘을 다하여 치되 꿈쩍도 하지 않고, 지현의 아들이 또한 간간이 울며 기절하여 버리는 것이었으니, 이 때에 부인이 지현에게 나아가 이대로 고하니, 지현이 더욱 놀라고 실색(失色)하며 부인이 해룡을 도로 내리라 하니 그 아이가 여전히 노는 것이므로, 지현과 부인이 또한 괴이히 여기었으며, 그 날 밤에 또 그 아이가 간데 없는지라. |
바로 옥중에 나가 보니 아이 또한 해룡에게 안기어 희롱하며 놀거늘 데려왔더니 이로부터 아이가 울며 옥중으로 가자 하더라. 아무리 달래어도 보채며 굳이 옥중으로 가자고 조르니, 견디지 못하여 시녀로 하여금 옥중으로 데리고 가게 하니, 그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웃으며 해룡에게 안기어 노는 것이 아닌가. 해룡의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아니 하는지라 지현이 할 수 없이 생을 방송하여 아이를 보라 하니, 생이 사례하고 그 날로부터 거처할 때 의복과 음식 등을 갖추어 극진히 하더라. |
이 때 변씨는 해룡이 대살(代殺)은 고사하고 도리어 아중(衙中)에 있어 신임한다는 말을 듣고 놀래어 소룡과 더불어 의논하기를, |
“해룡이 저렇듯 하였으니, 만일 애매히 대살할 뻔한 내용을 다 지현께 이르면 반드시 우리가 죽을 일을 당하리라, 이제는 계교를 내어 이러이러하면 후환을 없이하리라.” |
하고, 즉시 해룡을 불러 말하기를, |
“이제 들은즉 외숙의 병이 극히 위중하여 명재경각(命在頃刻)이란 기별이 있으니 마땅히 아니 가지 못할지라, 내 소룡과 더불어 급히 가볼 것이니 가지 못하겠거든 집에서 자고 우리를 가게 하라.” |
하니, 해룡이 응락하고 나와 자는데 홀연이 불이 사면에서 일어나 둘러싸고 화광이 충천하니, 해룡이 바야흐로 잠이 깊이 들었다가 놀라 급히 뛰어나와 보니, 화염이 더욱 거세지며 불꽃이 하늘을 찌르는지라 난데없는 바람은 불길을 도와 불타는데 오직 외헌(外軒)은 조금도 불이 범하지 아니하였으매, 해룡이 앙천하며 탄식하여 말하기를, |
“하늘이 어찌 사람을 내시고 이렇듯 곤욕(困辱)케 하시는고.” |
하며, 들어가 벽에다 글을 쓰고 장삼의 분묘에 나아가 일장통곡하고 이에 옷을 떨쳐 길을 떠났으나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남으로 향하여 정처없이 가더라. |
고전소설 금방울전의 내용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다빈치맵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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