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샤은(謝恩) 겸 (兼)동지(冬至使) 셔장관(書狀官)을 슈망(首望)으로 낙졈(落點)신지라 이역(異域)의 멀니 나기 당니 견마(犬馬)의 미셩(微誠)이 지극경결(至極耿結) 아니라 냥친(兩親)이 년셰 놉흐시고 당(慈堂) 병환(病患)이 즈시니 인(人子)의 졍(私情)이 엇지 졀박지 아니리오마 감히 (辭謝) 니지 못믄 고인(古人)의 니 배오 왕미고(王事靡盬) 인신(人臣)의 직분(職分)이라 믈며 연경(燕京)은 텬의 도읍이니 문믈이 비록 다나 산쳔은 의구(依舊)고 의관(衣冠)이 비록 변여시나 인믈은 고금이 업니 엇지 번 몸을 니혀 텬하의 크믈 보지 아니며 내 나히 졀멋고 다이 태평무(太平無事) 시(時) 당야 번 먼니 놀미 남의 쾌(快事ㅣ) 아니리오 |
드여 길을 뎡니 (拜表ㅣ) 슈월은 격(隔)지라 이에 급급히 치(治行)고 십뉵일식 후에 졍판 즁츄뷰(正使判 中樞府使) 니조원(李肇源)과 부사(副使) 호조참판 김면쥬(金勉柱)로 가지로 모든역관을 모도와역원(司譯院) 녈쳔누(列泉樓) 우셔 회동좌긔(會同坐起) 니 역원은 역관의 마을이오녈쳔누 시뎐(詩傳)에 닐너시 녈피하쳔(洌彼下泉)이라 니 시인(詩人)이쥬(周)나라흘 각고 새음을 쳐 감창(感愴) 으로 지은 배니 이 쳥(淸)의 됴공(朝貢)나 대명(大明)을 각 이오 회동좌기(會同坐起) 삼신(三司臣)이 님(臨幸)야 셔로 모드여 샹면(相面)고 길일(吉日)을 의논믈 위미라 인야 셰폐미(歲幣米) 여 밧고 샹(潛商)을 별반통금(別般通禁)며 방믈(方物) 시 의 이젼치 소흘이 거치 못 쥴노경긔도황도평안도의 관(關子)니 셰폐미(歲幣米) 마다 진공(進貢) 이오 샹(潛商)은 금(金)과 인과 돈피(豚皮) 등믈이니 본 드려가게 믈화(物貨) 장들이 만니 드러가 니(利) 니 국법의 금믈(禁物)이 잡히이면 압녹강(鴨綠江) 두에셔 효시(梟示) 법이로 니(利)예 탐야 혹법을 범니 이시매 뎐지(傳旨)여 관 엄히 니라 |
념일일(念一日) 정(丁巳) 에 헌부(司憲府) 장녕(掌令) 계하(啓下)여 념이일(念二日) 샤은(謝恩)니셔장관은 이 즁 어(御使)지라 직픔(職品)로 감(大監) 겸(兼帶)홈이 곳 젼례(前例)러라 |
십월 초 뉵일 |
호조(戶曹)의셔 셰폐(歲幣) 봉과(封裹) 호조판셔 됴진관(趙鎭寬)이 부(副使)와 더브러 간검(看檢)니 졍(正使)와 셔장(書狀)은 젼례의 참예 일이 업더라 |
십뉵일 |
졍부(政府)의셔 방믈(方物)을 봉과(封裹) 좌의졍 니병모(李秉模) 참판 니치즁(李致重) 니조판셔 김문슌(金文淳) 호조판셔 됴진관(趙鎭寬)병조판셔 니시슈(李時秀) 형조판셔 박종갑(朴宗甲) 공조참의 박규슌(朴奎淳) 승지 신기(申耆)와 부셔장((副使書狀)이 가지로 참예여 믄져 사(査對) 니 사 태상황(太上皇)과 황뎨(皇帝) 표문(表文)과 대국녜부(禮府)의 뎡(呈) 문(咨文)이니 각각 졍본(正本) 부본(副本)과 초본(草本)이 이시니 글은승문원(承文院)의셔 글고 글시샤관(寫字官)이 지라 혹 그 거시 이시며 글 진 거시 이실가 야셔울셔븟터 사(査對)야 난 후 참참(站站)이 믁을 제마다 삼신(三司臣)이사관(査對官)과역관(譯官)을 리고 샹고 법이러라 |
문에 대국의셔 내여 보 인(印)을 쳣시니 은됴션(朝鮮)국왕지인(國王之印)이라 여시니 금으로 글고 거복뉴(紐) 안쳐시며 우편(右便)의 전(篆字)로 고 좌편의만쥬(滿洲)글로 시니만 한(汗)의 니러난 지방이라 |
대국법의 금으로 근 인의 거복뉴(紐) 친왕(親王)을 쥬 인(印)이오 친왕(親王)은 황뎨의 형뎨와 황(皇子) 일 일홈이라 |
안남국(安南國) 뉴구국(琉球國)튼 나라흔 다 은(銀)으로 근 인(印)의 탁타뉴(橐駝紐) 안쳣시니 일노 보와도 우리나라 졉 거시 외국(外國)의 비 배 업 쥴을 가히 알너라 |
이날 나 졍본(正本)을 보고 부(府使) 부본(副本)을 보고 역관(譯官)으로 여금 초본(草本)을 닑히며 좌의졍은 병조판셔로 더브러 문(咨文)을 샹고니라 |
방믈(方物)은 어람(御覽)시고 도로 리오시믈 기려 인야 봉과(封裹) 즁(行中) 역관(譯官)을 분부야 각각 분야 짐을 인 후셔쟝의 인(印)으로 낫낫치 인봉(印封)야방믈채원(方物採使員)양쳔현령(陽川縣令)님홍원(林弘遠)을 맛져 여금 각별이 됴검(照檢)여 직희라 니 믈읫 뉵십 (駄)라 이날 졍(政事) 참예치 아니니 젼례(前例)러라 |
십구일 |
은 표(拜表) 날이라 가국(家國) 날 쥴을 미리 아 일이언마 이날을 당니 새스러운 졍회(情懷) 엇지 다 측냥리오 긴 밤을 겨오 지고 계명후(鷄鳴後) 냥당(兩堂)의 하직고 쳐 위로며 인여 궐하(闕下)의 나아가니 이날상(上)이경모궁(景慕宮)의 젼(展拜)실 신 등을 명야 친히 슉단(肅拜單子) 옥교(玉橋) 알 드리라 시니 신 등이 례로 슉단(肅拜單子) 드리고인의(引儀)챵(唱) 소 와 온 후상이 명샤 압흐로 나아오라 샤 삼신(三司臣)이 례로 츄창(趨蹌)야 나오니 하교(下敎)샤 샤 경 등이 만니 야 이역(異域)의 가지라 엇지 창연(愴然)치 아니리오 시고 샹(上使) 특별이 어의(御衣) 쥬시고 인여 이엄(耳掩)과 호쵸단목(胡椒丹木)과 밋 각죵 납약(臘藥)을 리오시고역관도 각각 쥬시니 신 등이 제복(齊伏)야 밧와 이엄(耳掩)은 사모(紗帽) 우 쓰고 례로 믈너나오니 쟝 이국(異國)의 손이 되여 경필(勁筆)이 묘연지라 번 우러러 텬안(天顔)을 뵈오매 젹이 미셩(微誠)을 펴고져 오나 견마(犬馬)의 각이 깁오매 졋기 온지라 블감(不敢)와 드여 믈너 나와 일이 졍원(政院)의 모이여 환궁(還宮)시기 기려 인졍뎐(仁政殿)의셔 표(拜表)고 표(表) 문(咨文)을 뫼시고모화관(慕華館)의 나와 (査對) 후 삼신(三司臣)이 례로 발(發行)야 십니 여 져녁의 고양군(高陽郡)의 니니 군슈(郡守) 윤직(尹行直)과 방믈 채원(方物採使員) 양쳔현령(陽川縣令) 님홍원(林弘遠)과 부채원(副使採使員)평구찰방(平丘察訪) 한응 공장(公狀) 드리고 뵈다 |
이십일 |
샤뎨(舍弟) 쥰슈(駿秀)와 종뎨(從弟) 윤슈[중](允中)와 모든 종족(宗族)으로 작별고 나니 거류지졍(去留之情)이 사이 견지 못너라 |
파쥬(坡州) 니러 션산(先山)의 쇼분(掃墳)고 파쥬참(坡州站)의 듀달(奏達)야 슉소(宿所)다 |
이십일일 |
댱단(長湍)십니의 니니부(府使)됴희진이 와 보고 즁화(中火) 후 숑도(松都) 십니의 니러 슉소니 뉴슈(留守) 니면공[긍](李勉兢)과 경녁(經歷) 니진이 와 보니라 |
이십이일 |
평명(平明)의 발야 쳥셕동(靑石洞)슈십니 댱곡(長谷)을 지날 비록 각읍의 지풍비(地帶豊備)고 위의(行次威儀) 혁연(赫然)나 도혀 각니 만니(萬里) 이역(異域)의 (行色)이 고단(孤單)며 반년 가국(家國)의 음신(音信)이 묘연(渺然)지라 의(意思ㅣ) 초연(焦然)야 연경(燕京) 장관(壯觀)이 도혀 예(例事ㅣ)라 |
칠십니 참(站)을 야 금쳔군(金川郡)의 니니 어덧 경긔(京畿)지방이 진(盡)고 이 황도 초경(初境)이라 거름을 옴기매 두 거름이 멀어지니 인졍이 진실노 견기 어렵더라 |
경긔 삼방(三方)의 역마(驛馬) 연셔역(延暑驛)으로 닙파(入把)더니 황도 쳥단역(靑丹驛)이 거지라 을 밧고와 쟝 젼진(前進)군슈(郡守)홍병덕과채원(採使員) 평산부(平山府使) 니인경과 부채원(副使採使員)쳥단찰방(靑丹察訪)김영면과방믈채원(方物採使員)금교찰방(金郊察訪)니한와 보더라 |
금쳔(金川)은 곳 가친(家親)이 오(四五) 삭(朔) 거관(居官) 고을이라 니민(吏民)이 다담(茶啖)을 초와 드리거 즁건량(行中乾糧) 바든 거로 답다 |
져녁의평산(平山)삼십니의 니러 슉소(宿所)니라 |
이십삼일 |
춍슈(蔥秀) 삼십니 중화(中火)고 셔흥(瑞興) 오십니 슉소니 부 님셩윤이 와 보다 |
이십일 |
검슈(劒水) 십니 중화고 봉산(鳳山) 삼십니 슉소니 군슈(郡守) 됴화셕 댱연현감(長淵縣監) 니노 와 보다 |
이십오일 |
황쥬(黃州) 십니 슉소니 병(兵使) 니격과 목(牧使)윤치셩(尹致性)이 와 보다 병(兵使) 니격이 부 와 볼 밧문의셔븟터 방의 들 졔지 여러 번 우 알외오 소며 안즐 젹 삼중석(三重席)을 초고 안자 셔로 인 후의부(副使ㅣ) 안변부(安邊府使)로 이실 제븍병(北兵使)로 샹하관(上下官) 지던 말을 며 졉지 아니 모양이 만흐니 부(副使ㅣ) 됴뎡 톄뫼(朝廷體貌ㅣ) 이러치 아닌 쥴노병방비쟝(兵房裨將)을 잡아드려 분부여 믈리치고병영슈장교(兵營首將校) 잡아드리라 니 이 결곤(決棍)코져 미라병(兵使ㅣ)실녜(失禮) 일이 업노라 고 잡혀 보내지 아니매 여러 번 왕복다가 부장계(狀啓)야 병(兵使) 논죄(論罪)니라 |
이십뉵일 |
황(黃州)머므다 부로 더브러 뎨안당(齊安堂) 졍의 나아가 사(査對)니라 |
이십칠일 |
즁화(中和) 오십니의 즁화(中火)니 부 김진졍은 셔울을 나갓다 더라 |
예셔 평안도 역마 가라 타고 여 대동강(大洞江)의 니니 오십니 왓지라 강변의 관션(官船)을 다히고 쟝교(將校)와 기(妓生)이 다 믈 령(待令)여시며셔윤(胥胤)됴후진이 우셔 보기 쳥(請)니 이 젼녜(傳禮)라 햐쳐(下處)의 드러 안즌 후즁군(中軍) 니시함과 채원(採使員) 함죵부(咸從府使) 윤범익과 방믈채원(方物採使員) 양덕현감(陽德縣監) 박명훈과 부마채원(夫馬採使員) 은산현감(殷山縣監) 박쥬우와 사관(査對官) 강셔현령(江西縣令) 도진구 지관(支待官) 슌쳔군슈 한영이 드러와 보고 증산현령 니영와 녕원군슈(寧遠郡守) 셔유릉이 인(因事)야 영문(營門)의 왓다가 모히엿더라 |
뇽강(龍岡) 니민(吏民)이 다담(茶啖)을 초와평양(平壤) 즁노(中路)로 와 마즈니 이 원(員)을 지낸 연괴(緣故ㅣ)라 여 리 혀 온 폐(弊)가 젹지 아니매 즁건량(行中乾糧) 바든 거로 졉니라 |
이십팔일 |
평양(平壤) 머므다 삼신(三司臣)이 가지로련광뎡(練光亭)의 모히여 사(査對)고 기악(妓樂)을 베프니라 |
이십구일 |
평양 머므다 역관(譯官) 홍쳬병 드러 낙후(落後)거 이 연유(緣由)로 장계(狀啓)니라 |
모든 역관(譯官)이 부연방(敷衍房) 하인(下人) 차뎡(差定)기 쳥거 슈역(首譯)과 여러 임역(任譯)을 맛져 여금 갈여 뎡(定) 만일 잘못면 슈역이 맛당이 죄(罪) 닙으리라 분부니 셔(書者) 셔흥(瑞興)니광복과 마두(馬頭) 슈안(遂安) 김황과 좌견(左牽)은 션쳔(宣川) 쟝동이와 농마두(籠馬頭) 션쳔(宣川) 최운와 일산(日傘)바지 가산(嘉山) 김셩감을 뎡엿더라 |
십일월 초일일 |
슌안(順安) 오십니 슉소(宿所)니 현령 심셩지와 보니라 |
초이일 |
슉쳔(肅川) 오십니 즁화(中火)니 부(府使)임쟝원이 와 보다 안쥬(安州) 뉵십니 슉소(宿所)니 병(兵使) 니유경과목 (牧使) 박셔원과 우후(虞侯) 왕한졍과 관(査對官) 영유현령(永柔縣令) 윤심약이 와 보니라 |
초삼일 |
안쥬(安州)머므다 동헌(東軒) 뎡(亭子) 햐쳐(下處)의셔 삼신이 모히여 사(査對)고졍부(正副使ㅣ)샹누(百祥樓)의 올나 기악(妓樂)을 베프니라 |
초일 |
박쳔(博川)진두(鎭頭) 오십니 말마(秣馬)니균됴나와 보고가산(嘉山)삼십니 슉소니 군슈 남궁갑이 와 보니라 |
가산은 년젼(年前)의 가친(家親)이 년거관(四年居官)신 고을이라 방슈영(防戍營)으로 일 쟝(將臺) 업더니 월늠(月廩)을 덜어 아샤(衙舍) 동편의 셰오고 친필(親筆)노 쟝(將臺)와 귀음졍(歸飮亭) 두 현판과 밋 기동의 년귀(聯句) 네흘 삭여 거러시니 귀음졍(歸飮亭)이란 말은 홈을 이긔고 도라와 슐 먹단 말이라 |
고을 사이 내 이리 지낸다 말을 듯고 다담(茶談)을 초와 마며 서너 즁이 은혜 닙엇노라 고 실과(實果)와 다식 등믈(茶食等物)을 가지고 와 마니 대개 져의 닛지 못야 을 알니러라 |
초오일 |
날 의 고을 션 두어 사으로 더브러 쟝(將臺)의 올나 두로 보다가 나뎡쥬(定州)뉵십니의 니로니목(牧使)오희샹(吳熙常)이 와 보니라 |
초뉵일 |
곽산(郭山)운흥관(雲興關)삼십니 즁화(中火)니군슈(郡守)희진(이 와 보고셩쳔(成川)십니 슉소(宿所)니부구슉이 와 보니라 |
초칠일 |
텰산(鐵山) 챠련관(車輦舘) 십오리 즁화니부권와 보고뇽쳔(龍川)양관(良策舘)삼십니 슉소니부유인쳘과션(宣沙)개 쳠(僉使)최셕년과셰림 쳠김호진이 와 보니라 |
초팔일 |
소곳 십니 즁화고의쥬(義州)삼십오리 슉소니 부윤(府尹) 니건양과 관(査對官) 태쳔현감(泰川縣監) 니만영과 닌산(隣山) 쳠(僉使)유죡즁과 쳥슈(淸水) 만호(萬戶)김남형이 와 보니라 |
의쥬 셔울셔 일천오십니라 아국(我國) 셔편으로 극[국]변(國變)이 디긔(地氣) 샹냥(爽凉)고 산(山水ㅣ) 명미(明媚)여 조금도 황냥(荒凉) 의(意思ㅣ) 업며 셩쳡(城堞)이 심히 웅위(雄偉)지라 등문(燈門) 우희동뎨일관(海東第一關)이라 엿더라 |
졍(正使)션각(來仙閣)의 햐쳐(下處)고부(副使)응향당(凝香堂)의 햐쳐고 나군당(君子堂)의 햐쳐 졍고 야흐로 드러 안매 슈쳥기(守廳妓生)이 은잔(銀盞)의 슐을 부어 나오 안쥬도 업며 반(盤)의 밧친 일이 업니 일이 셜만(褻慢)고 보기의 황당(荒唐)지라 내 이윽히 보기 마지 아니니 압 셧던역관이 니 이의쥬(義州)누지고풍(累來之古風)이라 니 니른바 고풍(古風)은 어 젹 비로 일인지 대뎌 즁원(中原) 사의 차(茶) 전 법을 본바든 일이라 웃고 믈니치니라 |
초구일 |
의쥬(義州) 머므다 부(副使)와 가지로션각(來仙閣)의 모혀 사(査對)고본부(本府) 즁군좌수(中軍座首) 블너 드려 샹(潛商)을 각별 엄금며 만일 나히라도 범법쟤(犯法者ㅣ)면 맛당히 죄 치 닙으리라 분부니라 |
초십일 |
의쥬(義州) 머므다 방믈(方物) 뉵십 태(駄) 다시 봉과(封裹)부윤(府尹)으로 더브러 샤(客舍)의셔 가지로 간검(看儉)여 믄져 글로 일일히 구별하여 흔 후샹통(上通事)마두(馬頭) 두 놈을 차뎡(差定)여 쥬쟝(主掌)야 간검(看儉)고 봉과소입유둔(封裹所入油芚) 공셕(空石)과 결과(結裹) 노히 심히 만흐며 봉(內封)의 투셔(套書) 치고 외봉(外封)의 다 인(印)을 쳐 봉과(封裹)여 사(客舍) 월낭(月廊)의 히고본부장교(本府將校)로 여금 쥬야슈직(晝夜守職)을 시기더라 |
삼경낭[냥](三更量)의황역져관(皇曆䝴咨官)변복쥬의 슈본(手本)을 보니 대강여시 십월 초일일 새벽의 오문(午門) 밧긔 나아가시헌셔(時憲書)일 벌을 녕슈(領受)니시헌셔(時憲書) 녁(冊曆)을 니이라 |
태상황(太上皇) 일홈이홍녁(弘曆)인 고로 녁(冊曆) 녁(曆字) 휘야시헌셔(時憲書)라 더라 |
대국의 녁을 새로 반포(頒布)매 궐(闕內)예셔 건륭(乾隆) 년호 고 밧긔셔 가졍(嘉貞) 년호 다 며 오월 이십일일의 태샹황(太上皇)이 황뎨로 더브러열하(熱河)의 거동(擧動)여 만만슈셩졀(萬萬壽聖節)을 지내고 노졀(白露節) 든 후의 도라왓다 니열하(熱河)븍경(北京)셔 븍(北)으로 칠니 드러가 잇 디방(地方)이니 몽고(蒙古)나라셔 지쳑(咫尺)이라 |
궁궐(宮闕) 치(配置) 극히 사려(奢麗)니 일홈을피셔산장(避署山莊)이라 고 황뎨 년년(年年)이 녀름이면 이리 거동(擧動)야 삼삭(三四朔)을 지낸 후의 도라오니 일홈은 비록피셔(避署)라 나 실은몽고 방슈(防戍)이러라 |
구월 초의원명원(圓明園)의 거동야 만슈셩졀(萬壽聖節)을 지 경하례(慶賀禮) 졍지(停止)고 다만 관(百官)으로 여금 삼졔구고두녜(三際九叩頭禮) 엿다 니 만만슈셩졀(萬萬壽聖節)은 태샹황(太上皇)의 일이오 만슈셩졀(萬壽聖節)은 황뎨(皇帝)의 일(生日)이라 |
태샹황(太上皇)은 근력(筋力)이 강건(康健)여 오히려 만긔(萬機) 총단(總斷)고 각노화신(閣老和神)이 군국대(軍國大事) 오지 다 며 십월 이십일의 태샹황이녕비(寧妃) 봉야귀비(貴妃) 삼고방빈(房嬪)을 봉야방비(房妃) 삼으니귀비(貴妃) 나히 칠십이 갓가왓지라방비(房妃)으로 더브러 오래 궁즁의셔 태샹황을 공경야 뫼신 공(功)이 잇지라 이러므로 특별이 위(位) 나왓다 니 이 희롱(戱弄)으로 일이라 며 젼년(前年) 십월의 황뎨귀비(貴妃)츅호록시(‘金+丑’祜祿氏) 봉(冊封)야황귀비(皇貴妃) 삼아효슉황후(孝淑皇后) 봉(封)다 며 년(年事) 봄마다 녀름의 우(雨澤)이 고지 못믈 인야 겨오 면흉(免凶)이 되엿다 더라 |
이날 밤의 비국관(備局關子ㅣ) 려오니대국표풍(大國漂風) 사이 이시니 편(使行便)의 녕거(領去)야 가라 공(公事ㅣ)라 대국(大國) 산동[셩](山東省)ː등부(登州府)ː영셩현(榮城縣)사양명은 나히 팔십이오왕뉵녜 칠십일이오셕진공은 뉵십일이라 |
그나마 무리 합야 열두 사이니 고기 잡 탓다가 표풍(漂風)야(海州)ː연평도(延坪島)의 니니황감(黃海監使)니의쥰(李義駿)이 쟝계(狀啓)야 알외거 하교(下敎)샤 샤 대국 사이 표풍면 휼(慈恤) 배 맛당이 상녜(常例)의 혀 날지라 믈며 이번 표인(漂人)의 무리 팔십의 지난 쟤 이시니 원(自願)야 뉵노(陸路)로 가기 쳥 길이 더옥 먼지라 잘 드려 보 도리 가히 각지 아니치 못리니 의복(衣服)을 지어 닙히고 이틀 기 기려 가션뎐관(宣傳官)으로 여금평안감의게 맛져 (使行)의 븟쳐 보내되 길의셔 졉기 우리나라 디경(地境)의셔 던 로 치 고 년(來年) 션(先來) 장계의 무[히] 드러간 연유 알외고 비국(備局)으로 븟쳐 냥도(兩道)감(監使)와 삼신(三司臣)의게 분부여 표인(漂人)이 만일 도강(渡江) 젼(前)의 밋지 못면션뎐관(宣傳官)이 인야 (使行) 니 곳의 뎐라 여 계시더라 |
십이일 |
의쥬(義州) 머므다군당(軍資堂)의셔부윤(府尹)과 가지로 셰폐(歲幣) 밧니졈미(粘米)십 셕이오 잉미(剩米) 오십삼 두(斗) 팔 승(升)이라 |
이 피국(彼國)의셔 종묘(宗廟)의 쳔신(薦新) 이니 아국(我國)의셔 각별이 (擇)야 진공(進貢) 거시라 은셩쳔(成川)곽산(郭山)졍쥬(定州)두셰 고을의셔 진(進排)고 이나마 다른 고을은 무역(貿易)이 어려온지라셩곽산(成郭山)은 부민(府民)이 말의 넉 냥식 후가(厚價) 밧고 님시(臨時)야 밧치니 그 고을 아젼 쟝교(衙前將校) 밧칠 의 오 일이 업지라 이런 고로 이 졍(精)치 못야 근년(近年) 이로 죵죵 탈이 나니 역관(譯官)이 회로(賄賂) 피인(彼人)의 입을 막아 비록 무케 나 구챠 일이라 |
이번은 회동좌긧(會同坐起ㅅ) 날노븟터 긔영(箕營)의 관(關子)야 각별 엄히 쥴노 엿더니 이날 밧의 늙은역관이 다 니 이번 미(米色)은 근(近來)의 쳐음 본 배라 니 진실노 다 일이러라 |
각각목(白木)젼(纏帶)의 너허 인봉(印封)여 셰망(細網) 공셕(空石)으로 밧글 동혀 본부(本府) 슌영고(巡營庫)의 두엇다가 님시(臨時)야 슈운(輸運)게 니라 |
십삼일 |
의쥬(義州) 머므다 진번헌(眞蕃軒)은부윤(府尹)잇 동헌(東軒)이라 |
부윤(府尹)으로 더브러 안자 잡복(雜卜)을 밧 니 곳[주:다마]삼(海蔘)우피(牛皮)산피(山皮)니피(狸皮)장지(壯白紙)남초(南草)목(白木)은(銀子)등믈(等物)이라 |
너른 싸인 거시 뫼 야 보기의 금즉더라 |
말누 놉고 은 니 셔히 필 길이 업 아니라 이 치 만흔 잡복(雜卜)을 일일히 손조 볼 길이 업지라 젼븟터셔장(書狀)의비쟝(裨將)과 즁(行中)역관(譯官)과 밋부윤(府尹)의비쟝(裨將)으로 안동(眼同)야 간검(看儉)고부윤(府尹)과셔장(書狀)은 간검(看儉) 일이 업니 임의 젼례(前例) 되엿지라 그러나 아조 본 쳬 아니키 어려워 날마다 친히 간검(看儉) 일변(一邊)으로 져울의 달며 일변으로 운향고(運香庫)의 너흐니 날이 도록 무궁무진(無窮無盡)더라 |
대개 이 잡복(雜卜)이의쥬(義州)샹고(商賈)의 믈홰(物貨ㅣ)니비쟝(裨將)과역관(譯官)은 가얍게 달기 구(求)고의쥬(義州)소쇽은 쥰(峻)히 달기 구니 이 고이치 아닌 일이라 |
셔로 펴 조금도 방과(放過) 일이 업니 비록 부윤(府尹)과 셔장(書狀)은 아니 펴도 해롭지 아닌 일이러라 |
븍경(北京)드러가 역마 녜(例事) 삼남(三南)과함경도로 뎡야 미리의쥬(義州)와 믁다가 님시(臨時)야 각각 졍여 가게 니 각 역의셔 말과 마부의게 쥬 반젼(盤纏)이 젹지 아닌지라 만일 말이 됴치 아니타 야 퇴(退)면 인마(人馬)의 반젼(盤纏)을 도로 본역(本驛)의 밧치니 삼남(三南)셔의쥬(義州)지 왕(往來) 젹 은 거시 업지라 이러모로 본역으로셔 동징족징(同徵族徵)을 니 엇지 가련치 아니리오 진실노 병마(病馬) 곳 아니면 퇴 거시 어진 졍(政事ㅣ) 아니오 비쟝(裨將)과역관의 무리 혹 셔로 역슈[속](驛屬)의븍경을 보고져 놈의 쳥을 드러 맛당히 퇴(退)치 아닐 도 퇴고 혹 과히 다가 의 맛지 아니다 고 관셔역마(關西驛) 별노 뎡나 가니 그 폐 젹지 아닌지라 신(使臣)된 쟤 가히 피지 아니치 못 거시러라 |
십일 |
의쥬(義州) 머므다 부윤(府尹)으로 더브러 진번헌(眞蕃軒)의셔 잡복(雜卜)을 밧 다 도강 일(渡江日字) 뎡 졔 곳 뎡 날 슈일(數日) 젼(前)으로 말을 내고 진짓 도강 일 누셜치 아니니 이 잡복(雜卜)이 슈히 드러오게 이러라 |
십오일 |
의쥬(義州) 머므다 부윤(府尹)으로 더브러 진번헌(眞蕃軒)의셔 잡복을 밧 다방 군관(防亂軍官)의게 분부여 만일 쇄마군인(刷馬軍人)의 반젼은(盤纏銀)을 마련야 각각 차하 후의 혹 피인(彼人)의 슐과 음식을 갑 업시 먹어 피인(彼人)으로 여금 발괄거나 혹 블우지비은(不虞之備銀)을 어지라 면 결단코 업[엄]곤(恨死嚴棍)리라 분부니방군관(防亂軍官)은븍경길의 하인의 노자(路資) 차하 소임(所任)이오 블우비은(不虞備銀)은 감병영(監兵營)과의쥬(義州)의셔 혹 혜아리지 못 일을 당면 쓰랴 고 별노 명(名色)을 졍야 준 은으로 마다 (使行)의 가져가 젼례(前例)라 |
십뉵일 |
의쥬(義州) 머므다 도복쥬(到卜主)와 밋 연샹(燕商) 별쟝(別將) 등을 블너 드러 숑쳥포(送淸包)와 밋평양안쥬의쥬은포(隱包) 각별이 사실(査實)야 통늉(通融)야 균포(均布) 라 분부니 도복쥬(到卜主) 샹고(商賈)의 짐을 모도 지 놈이오 연샹(燕商) 별장(別將)은 샹고(商賈) 모도 지 소임(所任)이오 숑쳥포(送淸包)와 은포(隱包)숑도(松都)샹고(商賈)의 부침 믈화(物貨)와 셔로 의포의 니지 아니코 슘겨 드려가 믈화(物貨) 니이라 |
이날 대국(大國) 녜부(禮部) 문(咨文)이 나오니 영고탑(寧古塔) 사이 년(每年)의 됴션(朝鮮) 회령(會寧) 디방의셔 져 야 믈화(物貨) 밧고난 법이라 |
젼례(前例)로통관(統管)샹산(商算)의 무리 차뎡(差定)여 가지로 간검(看儉)라 연유(緣由) 믄져 지위(知委)홈이러라 |
졍부(正副使)와부윤(府尹)으로 더브러강무당(講武堂)의 모히여 본부(本府) 장교(將校)와 기(妓生)을 모도와 을 니이며 칼 이기 시험(試驗)니강무당(講武堂)은 일원(白日園)이라 일니 너른 가온셔 무예 강습 법이라 쟝교의 군복(軍服)이 션명(鮮明)고 안매(鞍馬ㅣ) 빗나경군문(京軍門)과 다미 업며 혹 마샹(馬上才) 쟤 이셔 월도(月刀)와 쌍검(雙劍)이 다 죡(足)히 일등이라 거시오 기이 젼립(戰笠)과 군복(軍服)을 초와시니 다 져의 비(自備) 배오 님시(臨時)여 의게 비 배 업다 며 검(雙劍)을 쓰 계집이 이시니 궁마(弓馬) 슝샹(崇尙) 풍쇽을 가히 알너라 |
은안마(銀鞍白馬)의 샹모(槊毛)와 쥬락(珠絡)을 라시며 거믄 깁으로 머리 동히고 녹의홍샹(綠衣紅裳)으로 션(爭先)여 젹셜(積雪)이 만산(滿山) 너른 가온대 시 횡치(橫馳)니 진실노 긔관(奇觀)이라 쟝교와 기의 조 우등으로 여부윤(府尹)이 샹을 쥬니 이 용동(聳動)케 의(意思ㅣ)라위화도(威化島)산영(山影)이 장 쾌(快)나 오날 구경의 비기지 못리라 더라 |
일은 쟝 도강(渡江)지라 손의 이 슈졀(愁切)더니 이날 치위 심야 삭풍(朔風)이 기리 브니 귀 풍슈(風水) 소와 누(樓) 압 호산(湖山)이 다만 회포(懷抱) 도을 이라 가국(家國)의 멀니 난 졍(私情)이 엇지 이러치 아니리오 |
십구일 |
이른 식후(食後)의부윤(府尹)으로 더브러압녹강(鴨綠江)의 니니 모 우 댱막(帳幕)을 첫지라 이윽히 안잣더니 졍부(正副使ㅣ) 나와 쥬셕(酒席)의 동셔(東西) 화 안 나 졍(正使) 아 안져부윤으로 셔로 여 안즈니 압 인매(人馬ㅣ) 구름 고의쥬(義州)셔문(西門)으로 나오 짐바리 히지 아니여 먹쥴 친 시 니엇더라 |
댱막(帳幕) 동편의 나모 셰오고 쥴을 여 안팟글 뎡(限定)여의쥬(義州)쟝교(將校)로 여금븍경드러가 인마(人馬) 졈고(點考)여 넘겨 보내고 댱막(帳幕) 남편(南便)의 댱막을 베퍼 셔장(書狀)의 비장(裨將)과 운향비쟝(運餉裨將)으로 여금 짐을 슈험(搜驗) 도강(渡江)기 슈일(數日) 젼(前)의셔장(書狀)의 슈결(手訣)을 쇠의 삭여 목패(木牌)의 박아 쇄마구인(刷馬驅人)과 지마구인(事持馬驅人)과 즁(行中) 노(奴子)와 샹(私商)의 드러가 쟤비쟝(裨將)과역관(譯官)외의 다 오니 이치 여 법이라 이날 일노 슈험(受驗)야 (牌) 샹고(相考) 후의 짐을 다 프러 속속히 뒤질 사은 의복을 뒤지며 샹토가지 뒤지니 혹 셩내며 븟그러 모양이 졀도(絶倒)더라 |
슈험을 매 발긔 이니의쥬(義州)잡복(雜卜)과 밋역관(譯官)의 (自帶) 믈화(物貨)들은 로 졀가(折價)니 합야 일만팔쳔뉵칠십구냥이오 당하(堂下)의 이십이원(二十二員)은 각각 오백냥이라 그나마 일칠십구냥 푼슈(分數)일관(日官) 니졍덕을 더 쥬니 이관샹감(觀象監)(冊) 무역(貿易)을 맛닷지라 특별이 더 쥬니라 인여 도강장계(渡江狀啓) 일 샹하 일이 다 편지 부치고 쟝 날부윤(府尹)의 젼숑(傳送)을 바드며비쟝(裨將)역관들은 댱막 녑희 모히여 음식을 먹으니 기이 이이 셧겨시며 샹(私商)과 군인의 가족들이 나와 보내 쟤 슐과 음식을 초와 니별니 쥬육(酒肉)이 님니(淋漓)고 강변 슈리(數里)의 사이 모혀시니 쟝관일너라 |
삼신(三司臣)이 례로 강을 건널비쟝(裨將)은 다 벙거지의 군복을 닙어시며역관(譯官)과건량관(乾糧官)별배외(別陪行外)의 다 갓 텬익(天翼)을 엿더라 |
졍부(正副史) 의구(依舊)히 쌍교(雙轎) 시며 나 좌차(坐車) 시니 우흔 가마 치 며시며 기 젹이 길고 뒤 두 박회 아시며 압흐로 긴 그러 을 메워시니 길이 평탄면 롭지 아니나 비탈길과 돌무덕이 당면 박회의셔 벽녁(霹靂)튼 소 웅쟝(雄壯)고 흔들니기 심여 혹 머리도 닷치며 도 치이여 과(過)히 닷치면 다 부어 프러지니 오란 후 의(意思ㅣ) 나지라 구지 안지 아니코 몸을 요동여 슈와 치 흔들면 닷치이지 아나 혹 이 드럿다가 양 닷치이니 놀나 여 내 도혀 우음이 나 쥴을 지 못너라 |
압녹강(鴨綠江)이 셰 가지 호여시니 이 니른 삼강(三江)이라 배라 이 삼강이 어이 합야 두테 여러 자히 되고 눈이 싸혀시니 을 모라 건너매 강인 쥴 아지 못너라 |
강을 건너 쟤 원역(員役)이 해(該) 삼삼십 인 이오 이 이십구 필이라 이졔 니러의쥬(義州)하인(下人)이 다 낙후(落後)니 다만군노[뇌](軍牢) 과 인노(引路) 과 졍(正使)의 쌍교(雙轎) 압 셔시며서쟝(書狀)은 일산(日傘) 로이며 마두(馬頭) 올흔 편의 셔고 좌견(左牽)은 외편의 셔시며 셔(書者) 뒤 니 (行色)이 고단(孤單)며 잇다감 마두(馬頭)와 좌견(左牽)이 외마 소로 권마셩(勸馬聲)을 니 극히 우읍더라 |
삼십오리의 마뒤(馬頭ㅣ) 디명(地名)을 알외오니 여러 번 닌 놈이나븍경들기지 그릇 일이 업니 이 어려온 일이러라 |
즁강(中江)의 니니 쇼셔강(小西江)이라 일더라 |
예 지나면 져의 히라 길 녑 갈슈플이 며이여 계유 슈 지나게 통여시니 회(客懷) 극히 슬프며 믈며 깁흔 겨울에 삭풍(朔風)이 쳐량(凄凉)여 셕양이 뫼 리 당여 머리 두로혀 동으로 라보매 눈믈 아니 내리 업며 보내 사도 강의셔 라보면 갈슈플 이의 푸른 일산(日傘)이 나븟기다가 잠간 이의 간 곳이 업셔지니 암연(暗然)히 쇼혼(消魂) 아니리 업다 더라 |
길의 늙은 나모 이시니 마뒤(馬頭ㅣ) 예 당여 장 지(白紙) 가지의 걸며 두어 번 졀여 망(所望)을 일워지라 손을 드러 빌기 마지 아니며 역마 쇄마군도 그리 아닌 쟤 업니 즌 가지의 흰 곳치 픤 듯더라 |
이날 일긔 심히 온화여 이삼월 더라 |
어름이 녹아 리니 길이 뮛그러워 기 어려오며쇼셔강이편이 오리가 되니 강믈이 파파(派派)이 호이여 흙이 다 즐기 심지라압녹강근원(根源)이 븍도두산(白頭山)아로셔 려 두만강 하류라 예 마라 일니 하이 댱강을 냥국(兩國)의 디경(地境)을 삼은고로 강믈 동편 셔편의 풍긔(風氣) 현연(顯然)히 며 강의 왕왕(往往)이 슈자리 사 피인(彼人)의 초막(草幕)이 이시며 산(山水ㅣ) 슈려(秀麗)고 님목(林木)이 춍울(蔥鬱)니 가히 밧 가람즉 며 사 사람즉 곳이 맛터라쇼셔강셔편의 뫼히 이시 일홈은마이(馬耳)라 니 바회와돌이 프러 병풍 치 둘너시며 겻 쟈 뫼부리 이시니 일홈은구리(九里)라 일 텰이 이셔 셤돌이 오히려 잇다 더라 |
십여 리 지나니 누른 갈슈플이 들에 미만(彌滿)야 라매 가이 업고 이이 블지 곳이 이시니 이 피인(彼人)의 산영(山營)던 곳이라 며 혹 길의 큰 남기 누어시니 크기 아람의 지난지라 녀름의 믈이 만흔 큰 남기 나와 돌어 걸니여 이럿타 며 슈 자곡이 깁희 두어치 되며 믈이 깁흔 곳은 다 다리 노하시니 이 년년(年年) 시(使行時)의의쥬(義州)에셔 노흔 배오 슈목(樹木) 이의 젹은 길이 두로 나시니 곳 피인(彼人)의 즘을 좃차 니던 길이니 지기의굴연셩(九連城)을 지나니굴연셩은 녯아양셩이오명(明)의지강보 베퍼 유격장군(遊擊將軍)을 두엇던 곳이라 오히려 여진 셩지(城地) 위 뫼허리의 이시며 예 지나매의쥬(義州)셩텹(城堞)과 다통군졍(統軍亭)이 다시 뵈지 아니니나라흘 나며 친졍(親政)을 니별 회푀(懷抱ㅣ) 더옥 비 곳이 업더라 |
압참의 니니 슈목(樹木)이 둘너 잇고 산곡(山谷)이 깁흐니 사으로 여금 못 원님(園林)의 승개(勝槪) 각키이며 믈마시 긔이(奇異)지라 쥬방(廚房)이 셕반(夕飯)을 초와 나오니 졍결(淨潔)고 소담하여 비위(脾胃) 열니이며 이곳은 한둔 곳이라 도강(渡江) 젼의의쥬(義州)장(將校ㅣ) 창군(槍軍)을 거리고 믄져 니러 구덩이 글고아 화토블을 질너 두엇다가 이날 그 우 댱막을 베플고 휘댱(揮帳)과 병풍을 면으로 막으며 쵸블을 히고 자리 펴 노흐니 엄연히 방안 더라 |
삼신 댱막이 십여보식 되니 다 모양이오비쟝(裨將)역관의 잇 곳은 밋 블은 픠오나 홋댱을 첫지라 잘 길이 업며 네 녁흐로 그믈을 고 하인이 다 그 안희 드러 블을 픠오고 찬 거 막으니 날이 더온지라 치위 견기 어렵지 아니니 심히 다더라 |
의쥬(義州)장교 아홉 사이 창군(槍軍) 십오명을 거리고 댱막 근쳐의셔 납팔을 블며 납함(吶喊)니 이 즘을 방비미러라 |
이십이일 |
밤이 졸한(猝寒)지라 둔 쟤 손을 블며 발을 굴너 화토블 겻 모히여 혹 셔며 안시니 보기 심히 민망더라 |
미명(未明)의군뇌(軍牢)(軍牢) 댱막 밧긔셔 납팔을 부니 이 니른 초(初吹ㅣ)라 구인(驅人)이 다 을 먹이고 이(二吹ㅣ)예 쥬방(廚房)이 조반을 나오며 인마 졍졔(整齊)고 삼(三吹ㅣ)예 드여 나니 예셔븟터븍경지 이리더라 |
십여 리 여 비셕 모통이 니니 길 언덕의 쟈른 빗돌이 이셔 여져 두 조각이 되여시니 글 완(刓)여 알 길이 업더라 |
금셕산(金石山)의 니니 챵벽(蒼壁)이 닌슌(嶙峋여 금과 돌이 셔로 섯기엿 며 크기 아국(我國) 관악산(冠岳山)의 비 거시로 혀 나고 명윤(明潤)기 지나며숑골산(松鶻山)이금셕산올흔 편의 이시니 슈목(樹木)이 만흐니 혹 니님(林) 장군(將軍) 경업(慶業)이의쥬(義州) 직흴 예 이 뫼 가만이 봉슈군(烽燧軍)을 두엇다 더라 |
금셕산을 잠간 지나 길 언덕 밋 려 안니 만샹(彎上) 햐쳐(下處) 군관이 믄져 니러 댱막을 치고 눈 우희 돗 닙흘 라시니 칩기 심여 오래 안졋기 어려온지라 샹부(上副使) 조반을 나온 후 즉시 교의 드러 안 나 좌챼(坐車ㅣ) 메오면 뒤 놉고 압히 즈니 가히 안지 못지라 치위 고 오 안자 즁의 밥 먹기 기릴 일이 다 남긔 을 고 길의 퉁노구 거러시며 역마 쇄마구인(驛馬刷馬驅人)들이 져희 각각 칠팔인식 동모(同侔)여 가지로 먹음새 니 두 놈이 양 믄져 참(站)의 니러 사의 밥과 쥭을 초와 기리다가 다 드러오면 짐을 브리오며 잠간여 도로 찰와내니 심히 신속고 쥬방은 상을 무른 후 긔명(器皿)을 슈습여 압참으로 려가니 그 형셰 더옥 군속(窘束) 못 밋 일이 업더라 |
낫참을 지나매 산(山水ㅣ) 더옥 긔이(奇異)고 슈목이 빗나며 토셩(土性)이 심히 기름져 사 사람즉 곳이 만흐며 창망(蒼茫) 이의 계견(鷄犬)의 소 나 더라 |
그러나 무인디경(無人之境)의 잇틀을 지내 묏즘 지나 거 보지 못고 오작(烏鵲)도 뵈 일이 업며 다만 총소 산곡(山谷) 이의셔 나니 피인(彼人)의 즘 갑 쟤라 더라 |
즁아문(中衙門)이란 곳의 니니 녯 아문(衙門)을 베펏던 곳인가 시부나 알니 업며 온졍틀이라 니니 길 온졍(溫井)이 이셔 셕츅(石築)이 완연고 슈셩(水性)이 더워 슐을 죡히 더인다 더라 |
샹총산(上蔥山)은 문(柵門) 안희 잇 뫼히라 여긔 라보매 표묘(縹緲)히 혀 나며 봉황산(鳳凰山)이 여러 뫼 이로 구름 기 치 뵈이더라 |
십여 리 여 탕참(湯站)이라 디명(地名)이 이시니대명(大明)의지휘(指揮使) 두어 직희던 곳이라 길 외편의 문허진 셩이 놉희 두어 길이오 그 가오[온]대 나뫼 옥여시니 호표(虎豹)와 암의 굴혈(窟穴)이 되여 쥬(白晝)에도 깁히 드러가기 어렵다 며 녀염 녯터이 완연히 분명며 밧 두듥과 우믈 젼형(典型)이 오히려 이시니 담 핫던 지위와 가온대 돌 노히엿던 곳이 의구(依舊)더라 |
역관이 니 오란 회반(灰礬)이 이곳을 지나면 업니 약의 너허 나력(癩瀝)의 부치면 굼기 나 겻 쥴기 담 몽치인 거시 구무 속으로 다 나온다 니 대개 인거(引去) 공(功)이 잇다 더라 |
예셔 오랑캐 혼자 동으로 향야 가 쟤 잇거 마두(馬頭)로 여금 어로 가뇨 무라 니 답즁강(中江)으로 가노라 니 므든 옷 러진 마으락이 써시니 산영 오랑캔가 시부더라 |
져녁의총슈(蔥秀)의 니니 한둔하 곳이라 길 남편의 긴 내 흘너 잇고 내 겨근 뫼히 이셔 졀벽이 다 프른 빗 여시니 이러모로 일홈을총슈(蔥秀)라 니 총(蔥字) 파총 니미라 아국(我國)령산총슈(蔥秀)셕벽과 은 암이 이와 방블(彷彿) 고로명(明)텬(天子ㅣ)령산으로 지나다가 총슈(蔥秀)라 일홈을 지으나 다만 이 곳은 소아(素雅)고 연미(姸美)고령산은 참암(巉巖) 의(意思ㅣ) 만흐니 젹이 다다 니너라 |
구덩이 우희 댱막을 친 거시구련셩(九連城)던 모양이오 납팔을 블며 화토블을 곳곳이 노화시니 이 어졔밤과 가지라 그러나 바람이 이 블고 일긔(日氣) 심히 치우니 밤을 새기 어렵더라 |
밤 든 후 피인(彼人) 두어 사이 쇼쥬(燒酒) 팔나 댱막 근쳐의 왓거치형(致亨)이 마두로 더브러 안치고 무 네 셩(姓)이 무시며 어늬 곳 사이뇨 그 즁의 나히 오 셩(姓)은강가(姜哥)요 본산동(山東)ː등쥬부(登州府)ː치현(治縣)사으로 니(生理) 위여 문(柵門) 와 사란지 포 되엿노라 거 무치현(治縣)이영셩(寧城)셔 몃 니(里)나 되뇨강개(姜哥ㅣ)이윽이 각다가 오 뉵칠 니나 되니 노얘(老爺ㅣ)영셩(寧城)을 엇지 아뇨 거 인야양명등 십오인이 표풍(漂風)여 아국(我國) 디방(地方)쥬(海州)의 니러시니명의 나히 팔십이라쥬샹(主上)이 특별이 어엿비 너기샤션뎐관(宣傳官)을 별졍(別定)여 리고 드러오단 말을 니니강개(姜哥ㅣ)오대 내 비록 가지로등[쥬]부(登州府)사이로 그 엇더 사인 쥴은 모나됴션국왕이 대국셔 혹 표풍야 오 사이 이시면 샹 극히 진뎜[념](軫念)시니 우리 평일의 감격여 배라 고 인여 손을 드러 치샤(致謝) 모양을 더라 |
이날 새벽의 쳥역관(淸學譯官) 고임을 보내야 봉셩(鳳城)의 나아가 여금 (使行)이 문(柵門)의 니 긔약(期約)을 젼여 진시(辰時) 문을 열게 니라 |
이십이일 |
미명의 비쟝(裨將) 뉴옥과 별(別陪行) 니광직과 진냥관 니시관을 믄져 보내여 문(柵門) 밧긔 니러 입(入柵) 인마(人馬) 검칙(檢飭)라 고 나 샹부(上副使) 미조차 젼진(前進)야 십오리 여샹뇽산(上龍山)아로 지나니 셔흐로 라보매봉황산(鳳凰山)놉흔 바회와 창벽(蒼壁)이 며 개 쳐 츔츄 며샹뇽산(上龍山)기으로조차 목을 막아시니 그 졔되(制度ㅣ) 길 되 쟝목(長木)으로 느러 박고 긴 남그로 뉘 로 여시니 틈이 셩긔여 젹은 사은 죡히 츌입(出入)염 며 당즁(當中)여 간을 셰오고 널문을 내여시 집을 로 니어시며 셧가의 네 글 붓쳐시니됴션진공(朝鮮進貢)이라 엿더라 |
문 놉희 길은 지나고 너븨 계유 슈 용납(容納)지라봉셩쟝(鳳城將)이 그 열며 닷기 쥬쟝다 더라 |
이젼은 문(柵門)이봉셩(鳳城)동편으로 오리 지나 이시니압녹강의셔 일삼십여 리라 그 이 뷔워 피의 혼잡(混雜)믈 방비엿더니강희(康熙)예 십여 리 믈녀 이리 옴겨시니 븍도(北道)셔수라(西水羅)[]지 이 치 막은 문(柵門)이 열 곳이라 삼신이 외(柵外)예 쟝막을 베퍼 됴반을 나온 후 인마와 짐바리 다시 졈고(點考)니의쥬(義州)셔 예지 역마(驛馬) 외의 짐 싯 쇄마의쥬(義州)역마로 실니이니 마부와 창군(槍軍)이 그 (數ㅣ) 무슈(無數)더라 |
인매(人馬ㅣ) 구 여 도강 젹과 다 업더라 |
문 열기 젼의역관고임이봉셩(鳳城)셔 도라와 목 틈으로 믄져 나와봉셩쟝(鳳城將)이 나왓다 통며황녁져관(皇曆䝴咨官)변복도라와 (柵內)의 머믄지 슈일이라 목 틈으로 나와 보거븍경소식을 무니 별노 다른 소문이 업고 다만 태샹황이 후년이 구십이 되지라 황뎨 쳔관(千官)을 거려 년(來年)으로 경하례(慶賀禮) 믈 미리 쳥니 샹황이 임의 허락다 며 니산관(山海關)외의 뉸질(輪疾)이 대치(大熾)야 망(死亡)이 만흔지라 길 간졍(乾淨) 곳이 업며 져의 일도 뉴관(留舘) 졔 아니 알흔 쟤 업다 니 심히 놀납고 념녀fkk오나 왕녕(王令)의 밋 배라 엇지 관겨홈이 이시리오 갑군(甲軍) 십여 인이 목의 의지(依支)여 담대 a>jr음고 셧난지라역관들이 혹 인며 담도 여 쥬 쟤 이시니 갑군(甲軍)이라 거슨 여 긔(旗) 빗츠로 화 군 슈 뎡여 여시니 이 젼혀 쳥인(淸人)이라 한인(漢人)이 호녀(胡女) 계집 삼아 식을 나흐면 일홈을 오금(烏金)조호라 야 한군(漢軍)이라 일니 이슌치(順治)의초(楚)왕구영(九英介)의 졍 법이라구영(九英介)슌치(順治)의 형(兄)으로셔슌치(順治)의게 위(位) 양고초(楚)왕을 봉여시니 지용(智勇)이 겸졈(兼全)여 셰샹이 다 초[](楚子)의게 비기 사이라구영늣게야 샹쳐(喪妻)고 우리나라 종실(宗室)에 구혼(求婚)니 군(君)의 녀로 허혼(許婚)지라총관(摠管)뎡명슈(鄭命壽) 보여 마자갈뎡명슈(鄭命壽) 본 아국(我國) 사으로셔 죄로 하여즁국의 드러가총관(摠管)이 되여 아국(我國)의 나오면 악(行惡)이 비 업 즁 호란(胡亂)을 겻건지 오라지 아닌지라 조금도 졔 을 거리지 못더니 이 나온 후 의구(依舊)히 악(行惡)여 은화(銀貨) 만히 츌(責出)코져 거군(君)의 녀(女子ㅣ) 위의(威儀) 대쟝(大張)고 명슈(命壽) 입(內入)여 지져 오 내 드러가초(楚)왕 엿오면 네 목슘이 쳐지리니 네 심(生心)이 나 내 나라셔 악을 냐 고 쟝 결곤(決棍) 거조(擧措) 오니뎡명(鄭命壽ㅣ)겁을 내여 죽기로 쳥니 이 심히 쾌(快) 일이라 일더라 |
드러가 초(楚) 왕비(王妃) 봉(封)얏더니 이삼년 만의구영개(九英介)죽은지라 그 후 군(君)이 신으로 드러가 을 보자 거강희(康熙)보기 허고 됴셔(詔書)여 오 왕비의 고초(苦楚)믈 내 심히 긍측(矜惻)히 너기더니 려가라 거 드여 려 오고 인여 아국(我國)의셔 문(咨文)여 니 쳐음으로 결혼여 이치 블니 이후로붓터 셔로 혼인을 막고 혹 만이 통간(通奸) 일이 이시면 군뉼(軍律)을 자 야 일노븟터 냥국(兩國)의 일뎡(一定) 법이 되니라 |
장 오란 후 문을 열거 일이 갈 문 안 슈십보 여 아문(衙門)이 이시니 이곳봉황쟝(鳳凰將)이 나와 안즛 곳이라 거믄 목으로 압흘 막고 문을 내여 츌입게 엿더라 |
봉황쟝영녕은 종실(宗室)이라 공(公事)로심양(瀋陽)의 나아가 도라오지 아녓 고로가셩쟝(假城將)니창아로 신여 니문어(門御使)희격과 가지로 교위(交椅)예 안졋고녕송관(迎送官)달보와셰셰관(歲稅官)타라합과문관(文官)졔조웅과통관길이통아와 밋댱경(章京)여덟 사이 가지로 셔며 안며 마(麻貝) 아역이라 명이 이시니 마 갑군(甲軍)을 거려 (使行)을 호위니녕송관(迎送官)과 가지오 아역은통관이 겸여 말을 통기 위미오문어(門御使)슈험통관(受驗通官)을 겸여시니슈험통관(受驗通官)은봉셩(鳳城)디방(地方)의 잇 관원이오셰셰관(歲稅官)은심양으로셔 뉵부(六部) 낭즁(郎中)으로 숑(差送)여 일년식 교체(交遞)다 며문관(門官)은 문을 맛튼 소임이오댱경(章京)은 갑군(甲軍)을 디 두목인가 시부더라 |
인여 보단(報單)을봉셩쟝의게 보내고 인졍녜단(人情禮單)을 여러 관원의게 화 준 후 입(入柵) 장계(狀啓) 오고 편지 붓치다 문의 드러올 의 남녜(男女ㅣ) 길예 모이여 보니 남 머리의 쓴 거시군노[뇌](軍牢)의 용(勇字) 벙거지 치 그러시 우리 둥그러 머리골 치 엿고 그 우희 블근 실노 샹모 치 덥허시니 이 니른 마으락이오 오슨 거믄 두루막이 닙어시 매 좁게 고 그 우희 등거리 흔 거 닙어시며 옷시 다 고롬이 업셔 단초로 워시며 등거리 튼 옷도 녑흐로 단초 웟고 바지 당바지로 통이 좁아 굴신(屈伸)이 어려올 듯고 옷기시 업셔 다만 털 잇 가죡을 둘넛고 두 부리의 굽모양 치 모믈(毛物)을 라 더우면 것고 치우면 느리쳐 손을 덥흐며 옷 빗 젼혀 검은 거 혹 지빗도 이스며 프 빗 젼혀 삼승(三升)이 만흐니 이 가난 놈이오 옷시 좌임(左袵)이 아니라 올흔 편으로 염외여시며 마으락이 여러 가지 털노 여 시 돈피(豚皮) 뎨일 호(好事)로이 니니 검은 비단으로 거시 곱고 졍(精)여 뵈며 머리털은 곡뒤 외예 다 가시며 나믄 털을 하 뒤흐로 드리워시며 뒤흐로 보면 우리나라 늙은 아희 즁놈 더라 |
녀 우희 두루막이 닙어시니 얼픗 보면 사나와 다미 업고 치마 혹 닙으니 그 졔되(制度ㅣ) 압흔 셰복이오 뒤흔 네복이로 문(柵門)셔황셩(凰城)지 여러흘 보지 못니 이 마을 계집이 일을 골몰(汨沒)이 기로 닙 일이 업가 시부며 혹 동젹우리의 당바지만 닙은 계집이 길의 셔시니 셜(褻) 믜여 고이여 븨며 머리털은 근 일 업고 사나 모양으로 졋게 비셔 곡뒤 뭉쳐 셔너번 트러 샹토 모양을 글고 빈혀 둘도 시며 귀의 귀엇골 아니 단 거시 업며 혹 어린 사나도 귀엇골을 다시니 괴이(怪異)지라 계집이 발을 동힛 듯 문(柵門)의셔 나토 보지 못니 다 진짓 오랑캔가 시브더라 |
사나 얼운과 아희 분변(分辨) 길이 업며 계집은 쳐녀(處女) 가리마 타시며 츌가(出家)면 모도 졋빗다 혹 열아문 셜 먹은 것도 졋비슨 머리 이시니 이 분명치 아니더라 |
악가(鄂哥)의 집의 슉소니 이 년년이 삼방(三房)의 졍 쥬인이라 더라 |
캉의 드러 안니 캉이란 거 블 거 니미라 집 졔도 다 일로 지어시니 호 오량(五梁) 칠냥(七梁) 구량(九梁)을 거러시나 녑흐로 그어 거 지은 법이 업고 네 벽을 다 벽돌노 싸하시며 혹 널노 막아시며 비록 창호(窓戶) 여러이나 츌입(出入) 문은 나 이오 지도리 쇠로 거시 업고 다 남그로 여시며 집 안희 혹 캉도 노하시며 두 캉도 노하시며 삼면(三面)으로 캉을 노흔 졔도도 잇더라 |
캉 아 블 녓 궁글 그러시니 굼기 젹고 깁흐며 남글 너허 블을 픠오면 무어시 잡아드리 긋 모양 야 블 곳치 활활며 졈 연긔 나 일이 업고 젹게 히되 심히 더으니 극히 묘 법이오 굴독은 가온 별노 싸하 탑(塔) 무은 모양 트니 그 놉희 집 기의셔 자 남즉이 지낫더라 |
집은 로 이어시며 혹 슈슛대로 이 동혀 라시니 오라여 그은 후 먼리 보기의 기와 고 집 말 다 회로 발나시며 기와 니은 법이 궁궐(宮闕) 외예 다 암기와 고 슛기와 섯거 니으지 못니 이 녜브터 잇 법이라 이날 삼십니 니라 |
십일월 이십이일 |
의 문(柵門) 머므다 남방(南方) 사 셔히 햐쳐(下處) 근쳐의 왓다 거 블너오니 둘은 샹고(商賈)요 나흔 슈(秀才)라 니 슈 션 니미라 손을 드러 약간 녜슈(禮數) 모양을 거 내 캉의 안기 쳥니 다 거러 안지라 거쥬(居住)와 셩(姓字) 무며 므 일노 남방 사이 여긔 왓뇨 무니 슈(秀才)라 사람이 답여 오 내 셩은양가(梁哥)오졀강(浙江)ː계현사이라 과거 맛치지 못고 니(生理)의 구(拘礙)야 야흐로 두 동뉴(同類)로 더브러봉셩의 니러 약포(藥鉋) 베플고 잇더니 귀국행(貴國使行)이 드러온다 거 귀경기 위야 니럿노라 니 거지(擧止) 못 단졍여 시졍(市井)과 다고 의복이 션명여 돈피(豚皮) 마으락이와 비단 두막이 닙더라 |
치형(致馨)이 무 그졀강사이라 니졀강도(浙江道) 텬하의 대관(大觀)이라 그 일 보와시며계현이졀강(浙江)셔 몃 니나 되뇨 망됴(望海圖師)로 보건대 셔호(西湖)의 긔이(奇異) 경치 쳔고(千古) 일홈난 승디(勝地)며 이 밧긔 여러 가지 경(景)이 이시니 고금의 소인믁(騷人墨客)의 닷토와 글 지어 풍경을 칭찬야 이긔 죡(足)지 못니 대져 텬하의 유명 곳이오 인간의 졀승(絶勝) 경개(景槪)라 니 듯기 원노라양이 니 나 사 곳이젼당셔호(錢塘西湖)의 머지 아니나 내 먼리 놀기의 이 이셔 갓가온대 셔히 본 일이 업지라 그 뭇 말을 답지 못며 졀강도(浙江道) 이졔도 텬하의 장관이라 니니라 |
치형이 녯 사의 글 쎠 뵈여 오 |
블견녀산진면목(不見廬山眞面目)[주:니] |
지연신신[산]듕(只緣身在此山中)이라 |
이 글 은 녀산(廬山)의 참면목을 보지 못니 다만 몸이 이 뫼 가온대 이시믈 인연미라 이 글은 그 뫼 속의 잇기예 먼리셔 뵈 긔이(奇異) 경개(景槪) 모단 말이라 일노양이젼당셔호(錢塘西湖)구경치 못하믈 비미라양이 오 지초(芝草)와 난초(蘭草) 심은 집의 드러 이시면 오라매 향긔(香氣) 잇 쥴을 모른다 니 내 곳이 이 모양이라 더라 |
무 악양누(岳陽樓)와 고소(姑蘇臺)몃 니 이 되뇨 양이 이윽히 각다가 녑희 두 사을 도라보와 무 말을 더니 글로 니 뉵여 리라 니 올 녀름졔쥬(濟州)츌신 사이 표풍(漂風)여소항쥬(蘇杭州)로 말암아 도라온 후 약간 노졍(路程)의 본 바 긔록(記錄)여시악양누(岳陽樓)가고소(姑蘇臺)의셔 삼십니라 여시니 그 그런 쥴은 짐작나 셔히 모지라 이러모로 무니 그 답이 이러더라 |
내 찬합(饌盒)의셔 약과(藥果) 내여 셰 사을 화 쥬니 캉의 려 치샤(致謝)고 먹으며 셔로 무 슈작(酬酌)이 이시니 대져 됴히 너기 모양은 이러 더라 |
샹방(上房)의셔 쳥여 가기의 다른 슈쟉을 못니라 |
이십삼일 |
계초명(鷄初鳴)의 나 오리 매 마뒤(馬頭ㅣ) 고여 오 이 디명(地名)은안시셩(安市城)이라 거 내 번연(翻然)히 네 녁흐로 도라보니 다만 큰 뫼히 하의 다핫고 슈목이 총잡(叢雜)여 별빗과 그림자의 일만 형샹이 희미지라 도로혀 머리 드리워 스로 각당태종(唐太宗)의 위무(威武)와 지략(智略)으로 친히 뉵(六師) 거려 능히 외온 젹은 셩(城)의 신(陪臣)을 당치 못여 다만 셩하(城下)의 군 빗내고 비단을 쥬어 신하된 사의 츙의(忠意) 기리고 쇽졀업시 도라가니 대개 능히 졔어(制御)치 못 쥴을 살펴 아랏 고로 이러 젼도(顚倒) 솜씨 부려 인군된 쟤 회홍광대(恢弘廣大)여 항복지 아니 거 거리지 아니코 졔 님군을 위여 아다온 츙셩을 셩(成就)홈이라 진실노 가히 을 어들가 시부면 비록 셰월을 허비여도 반시 일 계교로 쳐 여 눈 샹(傷) 븟그러오믈 스려니와 엇지 헛도이 머리 도로혀시리오 믈며양만츈(楊萬春)이 이에 감히 셩상(城上)의 올나 텬(天子) 졀여 하직(下直)노라 니 엇지 그 쟝며 엇지 그 의긔(義氣) 잇뇨 이 인군의 군 됴하 쟈 은 경계되리로다 내 일즉 그 글을 닑어 그 시(時事) 혜아리더니 이졔 그 니러 그 사을 보 나 바다 글과 나모 밧치 특별이 잠간 이라 기친 자최 어로 만져 슬프믈 일위여 녯 터흘 자 눈을 구을니니 엇지 긔이(奇異)치 아니리오 노가일긔(老稼齋日記)예 니이고구려동명왕(東明王)의 흔 셩(城)이 안시성(安市城)이 아니라 니 안시성(安市城)이 엇지 홀노동명왕(東明王)의 흔 배 아니리오 |
일통긔(一統記) 보건대 이 진짓안시셩이라 이리로 오리 여쥬필산(駐驆山)이 이시니 이 은 증험(證驗)이라 |
쥬필(駐驆)이란 말은 임군이 거동야 머므단 말이니당태종(唐太宗)이고구려 칠 의 이 뫼 머므럿 고로 일홈을쥬필산이라 니라 |
구문(舊柵門)의 니니 비로소 돗지라봉황산(鳳凰山)이 붓 튼 뫼리의 창검(槍劍)을 느러 셰운 니 돌이 프고 명미(明媚)여 잠간 보매 아국(我國)슈락산(水落山)의(意思ㅣ) 잇더라 |
봉황셩(鳳凰城)의 니니안시셩(安市城)의셔 삼십니라 아국(我國) 녯 방언이 봉황을 니 안시라 니 아희 글 호매 안시(安市) 봉(鳳)이라 지라 이 보건대 안시와 봉황이 대개 일홈이라 |
아국(我國)은 안시라 일며즁국은 봉황이라 일니 이졔봉황셩(鳳凰城)이 녯안시성(安市城)이 아닌 쥴 알니오만은 그러나 내 소견으로 혜아리[릴]진대안시성(安市城)은 산을 의지여 험 거 직희니 가히 보쟝(保障)이 되려니와봉황셩(鳳凰城)은 평지의 셩을 하 형승(形勝)을 일 거시 업니 만(百萬) 졍병(精兵)이 부듸쳐 칠진대 츌즁(出衆) 조라도 응변(應辯)기 어려올지라 새벽의 지 곳이 분명안시성이오 혹 니안시성이뇨양(療養)ː개쥬(開州)디방의 이시니 여긔셔 칠십니라 니나 대져 완[와]젼(訛傳) 의논이라 |
셰샹이 뎐 안시성쥬(安市城主)양만츈(楊萬春)이라 니 이 말이 당셔연의(唐書衍義)라 의 이시나긔(史記)예 뵌 일이 업니 죡히 신(取信)치 못리라 니 이 분명 의논이라 |
봉셩밧긔 오회(四五百戶ㅣ) 되고 그 가온 져 이시니 구 보와 그림그릇 버려 노흔 거시 졍졔(整齊)야 보암 며 셩이 모히여 보 쟤 만흐니 계집은 문틈으로 좃차 엿보더라 |
셩안 셩샹(城上)의 아문(衙門)이 잇고 셩 밧그로 지나매 툐루(譙樓)와 셩낭(城廊)을 보지 못니 대개즁국의 셩 흔 졔되(制度ㅣ) 언덕을 의지 아니코 그 놉희 셩 밧과 가즉니 그런 일이 잇 당야 구다리 베퍼 밧글 엿보가 시부더라 |
셩(城)을 다 벽(甓)으로 하시며 아 퍼지고 우히 며 남편(南便)의 문을 내여시니 단쳥(丹靑) 문이 표묘(縹緲)며 셔편(西便)은 문을 내지 아니여시며 동븍(東北)은 뵈지 아니하니 잇 쥴 아지 못너라 |
오륙니 여삼차(三叉)란 믈이 이시니 일홈은 비록 하슈(河水)라 나 일즉 젹은 용납(容納)지 못게 여시니 지난 바의 하슈(河水)라 일홈 쟤 다 이와 더라 |
십오리 여(四臺子)졔가의 집의 됴반니 인회(人戶ㅣ) 겨유 셰 집이오졔가(齊哥)의 집이 누츄(陋醜)여 견여 오 안졋지 못너라 |
안동(伯顔洞)안의 니니원나라안(伯顔)이 군 머무럿던 곳이라 셔치 아니며마공[고]녕(麻姑嶺)의 니니 특별이 뫼히라막고(莫高)라 일홈기 므 의(意思) 쥴 아지 못너라 |
령(嶺)을 지나 매셜뉴참(薛劉站)이 이시니 곳 당나라 셜인귀(薛仁貴)와 뉴인원(劉仁願)이 군 던 곳이오 니 솔참이라 니 문(柵門) 지난 후 예 니러 비로소 두어 솔이 이시니 셔리고 창울(蒼鬱)여 가히 랑온지라 솔나모 남편(南便)의칠셩(七星祠)란 당(祠堂)이 길의 이시니 지나 바 마을의 졀이 이시며 혹 돌을 러 감실(龕室)을 글고 흙을 하 가온대 븨워관왕(關王)의 화샹(畵像)과 밋 젹은 부텨와 토지신(土地神)을 안치고 압희 향노(香爐) 노하 녜공(禮供)고 졀과관왕묘(關王廟)의 문 압희 다 블근 쥿대 쌍으로 세워 삭망(朔望)이면 긔(旗) 고 졔(祭) 지내니관왕묘(關王廟) 근(近似)거니와 졀의 무의(無依)더라 |
즁이관왕묘와 졀의 잡되이 이셔 고기 먹으며 내음 나 플을 먹어 츌가(出家) 사의 모양 지 아니고 오직황셩(凰城)만슈(萬壽寺)즁이 못 즁의 도리 직흰다 더라 |
솔참을 진동뵈(鎭東堡ㅣ)라 니대명(大明)의 베픈 배라 이졔 셩이 믄허져 흔젹만 나마시며 인개(人家ㅣ) 오륙십호 되니막고령(莫姑嶺)의셔 이십니라 대개 이곳 디방이즁국의 극변(極邊)이라 |
셩의 집이 왕왕이 길의 잇 쟤 산을 의지여 경쇠 치 녀시니 만흐면 여라믄이오 젹으면 두셰 밧근 지나지 못지라봉셩을 지나매 기와집을 보지 못고 흰플과 누른 갈이 들의 미만(彌滿)여 문(柵門) 밧 한둔던 곳과 다미 업니 사의 집이 드믈고 젹은 쥴을 가히 짐쟉너라 |
십오리 여뉴가하(劉哥河)의 다 믈 너븨 지나 바의 젹이 너른지라 동으로 흘너 삼강(三江) 쥴기 되여시니 젼년(前年)의 비믈이 범남야 인개(人家ㅣ) 만히 잠기엿다 니러라 져녁의 황가장(黃家庄)의 니러황가집의 슉소니 참의 들 의 을 사이 별 치 뭉키여 구경며 권마셩(勸馬聲) 소 듯고 믄득 우어 니로 이 므 소뇨 며 오 사람은 을고 사람은 시니 이 무 모양고 니 대개 피인(彼人)의 법은 왕공 귀인(王公貴人)이라도 견매(犬馬ㅣ) 업슴이러라 |
문(柵門)으로 븟터 여긔 니히 길의셔 피인의 슈 모라가 쟤 소와 과 나귀 노새 메워시되 그 (數ㅣ) 갈지 아니여 혹 두셋도 메우며 다엿도 메이고 놈이 발 너믄 잡아 녑희셔 오라 가며 혹 슈 우 안져 모라가니 이 빗그로 른 즉 을 드러 치 소 벽녁 고 여러 즁의 그릇가 을 희여 긴 로 둘너치 법이 신긔(神奇)더라 |
남모 뭇 튼 것도 등의 싯 일도 업고 반시 슈의 시르며 사도 등의 짐을 지 일이 업고 목의 걸거나 엇게의 메어시며 올이 쟝목(長木)의 가족쥴을 두 긋 느르고 두 편의 다 짐을 거러 그 경즁(輕重)을 치 여 엇게의 메여시니 좌편이 알프면 우편의 메고 우편이 알프면 좌편의 메며 외박회 슈 이셔 우 짐을 싯고 나흔 을며 나흔 미러 가니 시른 거시 두어 힘을 겸지라 심히 경편(輕便)며 혹 혼쟈도 미러 니 슈도 잇더라 |
은 견매(犬馬ㅣ) 업며 쇼 코두레 아니여 브리지 아니면 들에 흣터 노핫다가 져녁 의 사이 막 가지고 쇼 면 셔로 모히여 소 듯 듯여 머리 이 고 사이 크게 소여 르루 면 밧비 라와 삽연(颯然)히 풍우(風雨) 트며 밤이면 한 두어 마구(馬廐)의 치 쟤 젹으니 아국(我國)의 업 일이오 쟝 슈 메우려 고 차뷔(車夫ㅣ) 소여 사오 사오 며 믄득 궁둥이로 압 두 틈으로 드러셔니 이 더옥 이샹더라 |
대져 나귀 역(役事ㅣ) 장 괴로오니 갈며 믈을 운젼며 슈레 메우며 밧갈기 고 소와 이 갈[길]마 지은 거 보지 못되 나귀 길마 지어 짐 싯 거시 만터라 |
이십일 |
어졔 참이 니 남으니 인매(人馬ㅣ) 못 곤핍지라 이날 삼방(三房)이 의논여 참만 쟈 고금사하(金沙河) 지나니 팔도하(八渡河)라 니르지라 믈이부[분]슈령(分水嶺)의셔 흘너 려 믈을 여 번 건너 고로팔도하(八渡河)라 며 하류 삼강(三江) 쥴기 되엿더라 |
이날 믈읫 삼오리 여통원보(通遠堡) 니가(李哥)의 잡[집]의 슉소니니 가(李哥) 곳 발쟝(撥長)이라 |
집이 못 졍졔(整齊)며 캉 문 우히 감실(龕室)을 글고 밧긔 오 종친(宗親) 삼대 신위(三代神位) 공봉(供奉)다 여시니 제 조샹의 졔 지가 시부다 |
금로 []시며 아 막은 거시 업더라 |
통원보(通遠堡) 진이보(鎭夷堡)라 니 곳대명(大明)의 셩을 하 쟝슈(將帥)로 여금 직희엿더니 이졔 셩(城) 지위 분명치 아니코 발마(撥馬) 두어시니 발매(撥馬ㅣ) 열셔히 잇지라 발마 비쳬(飛遞)라 니 비쳬란 말은 시 닷단 말이라 |
쳐음은 우쳬(羽遞)라 니 깃 우(羽) 니미라 근(近來)의관왕(關王)의 일홈을 휘(諱)여 비(飛字)로 곳쳐 비쳬(飛遞)라 니 역관이 니 남방(南方) 션 일즉 의 사이 표범의 머리오 져비턱이라 |
스로 일한(漢)나라오호장군(五虎將軍)쟝비(張飛)라 고 그 션려 니 요 사이 우리 거거[가가](哥哥)의 일홈을 휘(諱)여 도혀 내 일홈을 범(犯)니 엇지 그 공번되지 아니뇨 니 이 이샹 일이라 더라 |
발마(撥馬) 니 법이 시(時刻)의 칠십니 니황셩으로붓터 문(柵門) 니히 사흘이면 득달(得達)니 이 다시 내 여 너므며 산 우 시 올으미 놀난 산즘 다 더라 |
영숑관(迎送官)은 문븟터황셩지 니히 (使行)과 치 치 믁어 (使行) 도라옥 젹의도 며호송관(護送官)은 지나 바 군현(郡縣)의 가라 며 갑군(甲軍) 삼십뉵명이 뒤흐로 좃차 른다 여닐곱 밧근 뵈 일이 업더라 |
봉셩셔븟터 일의 냥찬(糧饌)을 쥬 거시 이시니 삼신은 이 두 되식이오 감여 하인은 되식이 되니 대국 되가 우리나라셔 되된다 며 찬믈(饌物)을 졔육(猪肉)을 삼방(三房)의 각각 식 돌녀 쥬며 그나마 잡믈(雜物)은 셔히 모고 도 필의 곡초(穀草) 두 뭇식 쥰다 더라 |
봉셩셔심양지와심양셔산관(山海關)지와산관(山海關)셔븍경지 마련여 쥰다 니 이 젼븟터 바다 일이 업니 쳐음은 먹기 븟그려 아닌 일이오 그 후 젼례(前例)되여 거론(擧論) 일이 업니통관(通官)과녕관(領官)과 우리나라만샹군관(彎上軍官)과군뇌(軍牢)의 무리 셔로 바다 먹다 며녕송관(迎送官)은 은(銀)을 칠팔냥이나 쥬고 자리 사온다 니 의셔도 쥬 거시 잇거니와 참참이 고을셔 녜(例事) 쥬난 거시 잇다 더라 |
슈역(首譯) 김윤셰슈 삭을 내여 셰폐(歲幣) 실니 일노 어졔 문(柵門)셔 낙후(落後)엿더니 져녁의 밋쳐 오다 |
이십오일 |
평명(平明)의 발여 십여 리 니 슈십 슈 믈화(物貨) 득이 싯고 셔로 니어 마조 오니 곳져관의 무역여 오 배라 슈의 시른 거시 갑시 다 슈만금이로 우리나라 사이 녕거(領去)여 오 일이 업고 슐위 셰(貰) 파 오랑캐 내여다가 쥬기 기리지라져관이 문 니로런지 임의 오일이 남앗고 차븍(此卜)이 이졔야 비로소 예 지나가니 일이 극히 소홀나 도라갈 샹고(商賈)의 짐도 이 모양 더라 |
초하구(草河口)리 지나답동(沓洞)이라 니니 우리나라 말노 논골이라 |
흙이 심히 솔엉져 봄과 녀름은 의 져 지날 길이 어렵다 더라 |
십오리 여분슈령(分水嶺)의 니니 령(嶺)이 별노 놉지 아니코팔도하(八渡河)근원(根源)이 이 고 븍편(北便)의셔 난다 더라 |
고가(高家) 재유가(兪家)두 고 너며[머]녕[년]산관(連山關)의 다니 아골관(鴉鶻關)이라 니더라 |
이날 오십오 리 니 관의 셩곽(城郭)과 돈(燉臺) 이시니 돈 봉화 드 곳이라 |
벽으로 둥글게 독 치 무어 그 우 봉화 켜게 나 셩곽과 돈 다 믄허져시며 인개(人家ㅣ) 로십 회(戶ㅣ) 되더라 |
봉셩븟터 을 잇 푸[포](鋪子ㅣ) 이시니 음식과 슐을 나봉셩외예 다 누츄더라 |
이날 길이 젼혀 산곡(山谷) 이로 니 길이 좁고 긔구(崎嶇)여 슈 갋셔 몰기 어려온지라 문으로 나가 짐슈 혹 셔 고개길희셔 만나면 피 두루칠 길이 어려워 믄득 민망코 위더니유가(兪家)고개의셔 짐 시른 슐위 두어시 부(副使) 교와 마조쳐 셔 부븨여 지나더니 이 놀나 교 치고 니 긴 브러져 동강이 나지라 부(副使ㅣ) 을 고 참의 드러가니 교 졸연히 고치기 어려온지라 먼 길의 젼진(前進)키 어려워 민망지라진가(陳哥)의 집의 슉소더니 범[밤] 즁의 범 우 소 웅장이 나니군뇌(軍牢)납팔을 부러 투기더라 |
이날 벽의의쥬(義州)샹고(商賈) 문(柵門)의 낙후엿던 쟤 밋쳐 오매셔울편지 보니 가국(家國)이 다 태평지라 엇지 경(慶事ㅣ) 아니리오 |
이십뉵일 |
부(副使ㅣ) 피인(彼人)을 블너 교 고치기 의논니 가족으로 고 넙은 쇠 박아 밤이 고친지라 평명(平明)의 발여 을 건너 십여 리 니 믈을 로 건너 그 슈 아지 못며 길 인개(人家ㅣ) 셔너히 이시니 가온대 [제]신(祭臣) 위 집을 베플고오봉관(五鳳舘)셰 시며 압 셕비(石碑) 세웟더라 |
언덕의 오니 큰 내 언덕 아로 좃차 흐르지라 언덕이 심히 좁으며 어 길이 장 밋그러오니 길 가기 위더라 |
언덕이 위이(逶迆)여 쳔곡(川谷) 이로 드러가니 이곳회령녕(會寧嶺)밋치라 두 언덕의 슈목이 고 등 너츌이 뭉킈여 우러러 하을 보지 못며 참(站)의셔 날 눈이 리더니 이에 니러 더옥 장(壯)이 오지라 |
눈곳치 남모 우희 와 산의 득여 눈이 바의니 이 긔관(奇觀)일너라 |
녕이 놉고 길이 험매 길흘 살이여 올나가게 여시니 그리 급 오기 어렵지 아니나 틈틈이 호(虎豹ㅣ) 이셔 사을 엿보 니 심히 두렵더라 |
고개의 올나 먼리 동븍(東北) 다히 라보니 셜즁(雪中)의 먼이 보지 아니나 텁텁 호산(胡山)이 은영(隱映)여 이 업지라 이 돈연(頓然)히 사오나오며효종대왕(孝宗大王)겨셔봉님대군(鳳林大君)으로심양(瀋陽)의 드러가실 우즁(雨中)의 이 고개 지나실 곡됴(曲調) 노래 지어 오샤쳥셕녕(靑石嶺)지나거냐옥화관(玉河舘)이 어 오호풍(胡風)도 참도 찰사 누즌 비 무 일고뉘라셔 내 그려내여 님 계신 보가 노라 여 계시니 곡죄(曲調ㅣ) 심히 슬프고 격졀(激切)지라 당시 샹샹니 더옥 눈믈이 옷깃 졋 쥴을 지 못너라 |
고개 진(盡)매 오륙 인개(人家ㅣ) 이시며 졀과 묘당(廟堂)이 이시니 대개 졀이 이시며 믄득 묘당이 이시며 만일 다만 묘당만이면 부쳐와관왕(關王)을 아로 위니 피인(彼人)의 존슝(尊崇)미 피 다 업 쥴 가히 알너라 |
십칠니 여쳠슈하(甛水河)의 니니 인개(人家ㅣ) 즐비여 간혹 기와집이 이시며 큰 마을의 반시 젼방(廛房)이 이시며 젼방의 반시 별회(別號ㅣ) 이시니 다 현판(懸板)을 라시되 가히 이긔여 긔록지 못여 집문의 네 오 단목유풍(端木遺風)이라 여시니 이 매(賣買) 집이라 |
공자(孔子)뎨(弟子)공(子貢)의 셩(姓)은 단목(端木)이니 믈을 븟게 기로 일홈이 잇 고로 이러 시니 가히 욕되다 니너라 |
참의 니니 삼십니 지라 참 남녁희 믄허진 셩(城) 지위 이시니 대당(大唐)젹 진(陳)을 베펏던 곳이라 |
인개(人家ㅣ) 여호의 지나고 졀과 묘당(廟堂)이며 젼방(廛房)이 다 지나 바와 가지며 참의역승(驛丞)이 이셔 젼혀 졍(政事) 리니 의 먹 거시은(銀子)삼냥과 대미(大米) 삼셕(三石)이라 |
심양(瀋陽)병부(兵部)로븟터 졍(差定)여 두어시나 과만(瓜滿)여 교쳬 법이 업니 갈고져 면 스로 간다 더라 |
이 참의 발마(撥馬) 십오 필이 이시니 필의 로 쥬 거시 은자(銀子) 오분(五分)이 되며통원보(通遠堡) 두 분(分) 오리(五厘)라 니 대개동팔참(東八站)이라 거시심양지 문(柵門)의 니른지라 반참(半站)이 갓가오면 (料ㅣ) 감(減)인다 더라 |
이날 낭산(狼子山)의 슉소려 더니 오후의 눈이 더옥 심지라 젼진키 어려워 드담가의 집의 햐쳐 뎡니담가 갑군(甲軍)이라 |
샹황(上皇) 긔하(旗下)의 마이고 일홈은국동(國東)이니 위인(爲人)이 못 간샤여 뵈고 약간 글 아더라 |
농마두(籠馬頭)운(雲泰)한어(漢語)로 말을 능히 지라국동(國東)으로 더브러 말을 시기니우[운]져의 지 형셰 무른대국동이 니 졔 집 소솔(所率)이 열두 사이오 과 소 세흘 치지라 갑군(甲軍)의 (料ㅣ) 일삭(一朔)의 이냥(二兩) 은자(銀子)라 족히 써 냥식을 이우지 못 고로 마다 번심양의 나아가 습진(習陣)을 츠고 남은 힘으로 밧츨 가라 써먹는 거 도으니 밧로 갈이 거시 방(四方) 각(各) 일니(一里)라 두태(豆太) 각 말식 지이고 슈슈 닷 되식 지우니 샹년(上年)의 닷 셤 곡식을 거두엇다 지라 닷 셤이 우리나라 열닷 셤이 되고 로 갈이의 구실이 곡식으로 면 일승오홉(一升五合)이오 돈으로 면 쇼쳔[젼](小錢) 엿돈 오분(五分)이 되고 이외예 다른 부역(賦役)이 업다 더라 |
국동(國東)이 본 한인(漢人)으로 쳥인(淸人)이 되엿지라 무 쳥인도 갑군(甲軍)이 되고 한인도 갑군이 되거 너 한인으로 쳥인되기 므 의(意思ㅣ)뇨 네 션셰(先世)의 벼던 사이 잇냐 무니 답여 오 내 야야(爺爺)와 조공(祖公)이 다일관외랑(日官外郞)을 여시니 이역승(驛丞)과 튼 별[벼]이오 한인으로 쳥인되기 원믄 다만 발신(發身)기 져기 다 더라 |
무 홍긔(紅旗)라 긔(白旗)라 명이 무 의(意思ㅣ)뇨국동이 오 다만 당시의 셰운 배 여 빗로 인여 써 군 슈(額數) 분변(分辨)홈이오 별노 다 이 업다 더라 |
본 쳥인을 갑군의 이면 마다 먹 거시은(銀子)삼십냥이니 긔군(旗軍)과 보군(步軍)과 가지로 긔군은 을 비(自備)여 만일 도젹이 이시면 츌졍(出征) 이오 보군은 츌젼 아니 라도 봉슈군(烽燧軍)과 파발군(擺撥軍)의 구실을 면치 못다 며 한인으로 갑군의 인 쟈 예 은 이십냥을 바드니 이 아비 한인이오 어미 호녜(胡女ㅣ)라 본 쳥인과 다르더라 |
이 참의 졀 둘이 이시나 즁은 나 이시니 졀의 다 거두어 먹 거시 이시산관(山海關)밧기 안희셔 심히 젹은 고로 즁이 만치 아니타 며 즁과 쇽한(俗漢)의 옷시 별노 다 거시 업며 머리의 거슨 모지게 여 관(冠) 모양 트며 혹 담마으락이 시며 머리 모도 가시니 일노 승쇽(僧俗)이 다르더라 |
밤의 쇠븍소 나거 쥬인려 무니 졀의 경경(更更)이 친다 더라 |
이십칠일 |
눈이 오히려 가이지 아니코 바람이 크게 부지라 늣게야 날 문 밧긔 나오니 길 눈 우희 업더져 누은 사이 이시니 죽은지 오란가 시브되 지나 사이 본 쳬 아니니 대져 져의 법이 날 곳 어두오면 비록 졔 지친(至親)이라도 문을 열어 드리 일이 업며 자리 업면 슐막(幕)의 브치지 아니니 길 인(行人) 남누(襤褸) 쟤라도 다 포단(蒲團)을 가졋지라 이 죽은 사은 밤의 눈을 맛고 누어 어러 죽은 거시라 친속(親屬) 잇 쟈 자 가기 기리고 그러치 아니면 관의 너허 길 려 둔다 더라 |
칠팔니 인가 보지 못고 슈리(數里) 지나쳥셕녕(靑石嶺)을 님(臨)니 님목(林木)이 총잡(叢雜)고 악셕(惡石)이 뇌락(磊落)야 빗치 다 프니 이러모로 쳥셕녕(靑石嶺)이라 더라 |
녕(嶺)의 거의 다매 인개(人家ㅣ) 둘이 이시니 슛 뭇 사이오난[관]왕(關王廟ㅣ)녕(嶺) 우 이셔 집 마로 아니여시니 놉고 바람이 모질매 기왜 것칠가 념녀민가 시브며 묘(廟) 앏 비 세워시 글 완(刓)여 가히 보지 못너라 |
녕(嶺) 놉 회령녕(會寧嶺)만 못나 뎨일 놉흔 지나매 눈이 두터이 덥혀시니 밋그럽기 심고 쳡쳡 암곡(岩谷) 이로 슈구러져 발이 웅긔며 슐위 박희 기우러져 러질 시브며 길의 니인 언덕 우 세 바회 셔시니 형상이 괴셕(怪石) 트며 우러러 보기의 쟝 구을너 릴 듯니 사으로 여금 보기의 위터라 삼리 여 비로소 뫼 밧긔 나니 젹은 들이 이시며 븍으로 기여 젹은 길이 이시니 일노 좃차뇨동(遼東)으로 가면 쳡경(捷徑)이 된다 더라 |
녕을 지나매 슈삼 인개(人家ㅣ) 이시며 못 슈리 여 다엿 인개(人家ㅣ) 잇지라 두어 오랑캐 총을 메고 지나가니 산영 오랑캔가 시부며 총 모양이 우리나라 총의셔 고 치 심히 경편(輕便)며 피인(彼人)의 즘 잡 법이 만이 총을 놋 일이 업고 믄져 드여 새 듯 즘을 노하 잡으니 실슈 일이 업고 총의 여라믄 쳘환(鐵丸)을 약 고로 쳘환(鐵丸)의 마 즘이 믄득 세 쳘환을 맛다 더라 |
큰 녕을 지나 오 리 여 쇼셩녕(小石嶺)이 이시니 길이 셔리여 새 을(乙字)도 트며 갈 지(之字)도 튼지라 예 지나매 인개(人家ㅣ) 곳곳이 혹 십여 호 슈십여 호식 다 산곡(山谷)을 의지여 이시며 밋낭산(狼子山)의 니니 인개(人家ㅣ) 더옥 조밀(稠密)고 길 올흔 편 언덕 우희 소남기 울연(蔚然)이 슈플을 일워시니 이 도강(渡江) 후 쳐음 보 배라 통관(通官) 녕송관(迎送官)이 년(連)야 라 온다 길셔 보지 못니 대개 참의셔 나종 나며 나롱[종] 드러와 일 인명슈(人名數) 졈검기의 그러타 며 오날 두 오랑캐 을 여 압흐로 지나가니 이통관(通官)의 하인이 햐쳐(下處) 졍며 믄져 간다 더라 |
이날 풍셜(風雪)이 죵일 긋치지 아니고 치위 심지라 을 촉하여 참의 니러오가(吳哥)집의 햐쳐니 이곳 인개(人家ㅣ) 여 호의 지나고 젼방(廛房)이 이시며 슐막집과 져 집의 다 문의 블근 조희로 글귀 븟쳐시니 오 근본의 일만 니(理)라 며 믈(財物) 근원(根源)이 무셩(茂盛)타 여시며 머리 들매 깃븐 일을 본다 며 날을 긔약(期約)야 놉히 승(昇差)다 여시니 오 금으로 근 집은 인간의 두 아람다옹[온] 인연을 젼고 은하슈 텬샹의 별을 지다 고 크게 날 가온 져 열며 너비 텬하의 믈을 브른다 여시며 바람벽 우희 혹 쇼셜(小說)의 음담패셜을 그림으로 번역고 남녀의 희학(戱謔) 모양을 그려 븟쳐시니븍경지 가 길의 이러치 아닌 업니 져 사이 셩인군(聖人君子ㅣ) 아니면 뉘 믈 됴하 아니며 (色)을 됴하 아닌 어 이시리오마 특별이 사이 념치와 븟그려 이 잇 고로 비록 극하쳔(極下賤)이라도 방(放恣)히 입 밧긔 내 일이 업거 나라 풍쇽은 니(理)와 샹반여 글과 그림의 형용여 이 눈의 보 거 삼으니 풍쇽의 더러오미 이 더라 |
어졔 오날 큰 녕(嶺)을 년(連)여 넘기의 호마(胡馬) 둘식 셰(稅) 내여 좌차(坐車) 메우니 오랑캐 압셔 모지라 놉흔 듸 당면 십여 보식 년여 을 머므럿다가 다른 것 먹이 것 업고 내 만나거나 슐막 앏흘 당면 슈 먹여 지나며 별노 치 일이 업고 므 소 지면 이 응여 밧비 나아가고 슐위 메울 젹이나 브리울 젹의 사이 시기 로 귀 죵굿겨려 듯 하니 이샹더라 |
참의 드러 밤든 후의녕송관(迎送官)이 갑군을 보내여 샹방(上房) 하쳐(下處)의 사 슈 젹어 갈 눈 우 여러 신소 우 소 트여 잠을 놀내며 날마다 날 예 만일 지쳬여 낙후 쟤이시면 가기 최촉(催促)기의 병든 사이 이셔도 임의로 믁을 길이 업고 쇄마구인(刷馬驅人) 즁의 혹 슐을 먹고 쥬졍 일이 이신 즉통관녕송관이 참참이 분부여됴션(朝鮮)사의 슐을 파지 못게 면 슐막마다 감히 어그지 못여 갑 후히 쥬어도 잔을 파지 아니니 이 법녕 잇 쥴을 가히 알너라 |
쥬인오개(吳哥ㅣ)여러 번 기웃거려 무 말 고져 거 블너 드려 두어 말을 뭇고 네 집이 므 이 잇뇨 니 즉시협긔변방셔(俠氣邊方書)와삼국지두어 질 을 갓가[다]다[가] 보라 더라 |
슐을 갓다가 겻 캉의 쥬인을 전거 갑 쥬니 아니 밧지라 쳥심환(淸心丸)을 쥬엇다 더라 |
이십팔일 |
날이 도드며 발여마텬녕(摩天嶺)을 지나니 굽고개라 니지라 놉희 져근 언덕의 지나지 못더라 |
두관참(頭關站)을 지나 큰 믈을 다 번을 건너니 이 니론삼유하(三流河)오 탕하(蕩河)라 니 동븍으로 흘너태하(太子河)로 드러간다 더라 |
길의 왕왕 인개(人家ㅣ) 이시나 다엿 집이 지나지 못며 먼니 라보매 남편으로 산 밋 대촌이 이셔 일 로 년엿더라 |
왕샹녕(王祥嶺)을 지나매 셰샹이 니 효(孝子)왕샹(王祥)의 사던 배라 고 녕(嶺) 아 믈이 이시니 이왕샹(王祥)의 고기 낙던 곳이라 니 더옥 망녕된 말이라 |
대명(大明)시졀의 셩명 튼 (者ㅣ) 여긔 이시므로 일홈 배라 오리 여셕문녕(石門嶺)의 니니 프 돌이 셔로 여 문 여 녕을 지나매 흙뫼 네 녁흐로 둘니여 슈목이 업며졈[졍](冷井站)의 니러 부(副使)로 더브러 캉의 안자 졈심고 예 지나매 큰 들이 쟝 열니인지라 산이 졈졈 자 사으로 여금 지 못너라 |
홀연 산이 진(盡)고 대얘(大野ㅣ) 망망니 하이 밧긔 둘니여 모지라 다만 플과 남기 안개 트며 낭이 트니 일노븟터뇨동(遼東)팔니라 일 인매(人馬ㅣ) 브드친 개암이 트니 진실노 장관이라 |
고령[려]총(高麗叢)의 니니 촌낙(村落)이 영셩(零星)고 남녜(男女ㅣ) 모히여 구경니 이리로 사의 던 곳인가 시브나 셔히 모며아미장(阿彌庄)의 니러 남으로 라보매 흰 탑이 구 이의 소지라 날 빗치 빗기고 져녁 안개 져기 둘너시니뇽[뇨]동(遼東)울지탑(蔚遲塔)이라 |
여긔셔 삼십니 되며 그 아영안(永安寺ㅣ)이시니 일홈난 졀이라 더라 |
오리 여목창(木倉)이란 디명이 이시니 인개(人家ㅣ) 심히 번셩고 집 졔되(制度ㅣ) 못 졍졔고 아드리 큰 나무 새로 다드마 마을 앏 서너 곳 하시니 그 (數ㅣ) 가히 쳔만으로 혤지라역관이 니 이 다 피인(彼人)이 우리나라폐군(廢四郡)의 만이 드러가 남글 베혀 무엇다가 믈 만키 기려 슌류(順流)여 이리로 온다 며 오다가 만일 우리나라 사의게 잡히이면의쥬(義州)셕공(屬公)다 더라 |
야 태하(太子河) 건너니 믈을 세 번 건너되 두 곳은 다리가 잇고 연(衍水ㅣ)라 니연(燕)태(太子)단(丹)이 피여 슈멋던 곳이니라 |
황혼의영슈의 니니 이날 칠십니 여오가(吳哥)사의 집의 햐쳐니 집이 심히 챡박(窄薄)고 누츄나 버려 노흔 긔명(器皿)은 다 졍졔(整齊)고 빗나며 고으니 졔되(制度ㅣ) 아국(我國) 상사긔(常沙器) 튼지라 인개(人家ㅣ) 슈호 되고관제묘(關帝廟)와 졀이 나 둘 아닐너라 |
쳔산(天山)이 이리로브터 셔흐로 칠십니 되니 혀나 하 핫지라 본좌명산(左明山)이라 |
뫼 우 연(煙臺) 베퍼 일이 이시면븍경으로브터 셔로 응여 봉화 드러봉셩(鳳城)지 니니 이곳의셔 라 뵌다 져믄 안개 희미여 분명치 아니 더라 |
븍으로신뇨동셩(新遼東城)이 슈삼 니(里) 밧긔 뵈니 이 노라치 동으로 치려여 셩을 흔 배라 참의 니 후역관 사이통관(通官)을 보고 도라와 니 우리나라 강계(江界) 셩 두 놈이 피디(彼地)의 마니 너머가 인삼을 다가 피인(彼人)의게 잡히여 지져괴여 지며 으려 갈 두 놈이 쳐음은 슌히 븟들녀다가 홀연이 븟든 놈을 다리 메여 타기쳐 것구리쳐 시 라나니 피인(彼人)이 다가 밋지 못여 감히 은닉(隱匿)지 못여봉셩의 보(報)니봉셩셔 심양의 보거 회로(賄賂) 밧고 짐즛 놋타 야 야흐로 가도왓다 고통관이 오 너희 사이 간샤고 모질기 이러니 가히 무셥다 거역관이 답여 오 우리나라 사이 본 브드럽고 챡지라 반시 이러 일이 업리라 니통관이 가가대소(呵呵大笑)여 오 내 밋지 아닛노라 이 네 거말이라 더라 고 젼더라 |
이십구일 |
평명(平明)의 발여 십여 리 니졉관텽(接官廳)이라 디명(地名)이 이시니 우리나가 말노 면 관원(官員)을 졉 말이니 우리나라교구졍(交龜亭)튼 곳인가 시브더라 |
돈(墩臺) 이시니 놉희 열곱 길이오 우히 져근 집으로 셰오고 단쳥을 여시며 담을 둘너시 밧글 엿보 궁글 만히 내엿더라 |
뇨동(遼東)들의 니로모로브터 눈을 들매 궁진(窮盡) 곳이 업고 챵망(蒼茫) 가온 인개(人家ㅣ) 브드쳐 셔로 년(連)여시며 큰 길 좌우의 버들을 심거 히지 아니여시며 혹 남기 늙어 부러진 곳이 이시면 새로 심거 기워시니 이 강희(康熙) 시졀의 심기여 길을 표여 문으로브터황셩지 히지 아닌지라 봄의 닙히 픠면 이 경치될너라 |
길 밧 이루지 아닌 곳이 업며 지난 바의 녀념(閭閻) 남녀노쇼들이 [] 지어 모히여 보니 집 앏 인귀(人口ㅣ) 젹어야 여라믄의 리지 아니니 인믈이 번셩고 농(農事ㅣ) 부즈런 쥴 가히 알너라 |
방어소(防禦所)란 곳의 니니 셰 셕비(石碑) 길 셧지라 나흔 오졀(節)이 숑쥭(松竹)과 다고 나흔 오쳔셰(千歲)의 석지 아니리라여시니 부인의 졍을 졍표(旌表)야 우리 졍문(旌門)과 트미러라 난이보(爛泥堡)의 밋니 인개(人家ㅣ) 번녈(繁列)고 젼방(廛房)이 이시니 졀과 묘당(廟堂)이 을 가온대 잇 쟤 지난 바의셔 규모(規模) 졔양(制楊)이 놉흐며 크더라 |
소가(蘇哥)의 집의 됴반고 십오리 여 큰 다리 지나니 비(碑)예 오 만보교(萬寶橋)라 엿더라 |
다리 지나매 큰 슐위 슈십의 곰과 슴과 산졔(山猪ㅣ)와 노로 톳기 시러시며 삿자리의 무어 동혀 득이 시럿고 우희 누른 긔(旗) 자 황샹(皇上)이 시 거시라 고 슐위의 사이 좃차 동으로 향여 가지라 무니심양으로셔 슈운(輸運)여구뇨동(舊遼東)으로 간다 더라 |
십니보(十里堡)의 니러어가(魚哥)의 집의 슉소니 캉 우희 감실을 베플고 네 위판(位板)을 안쳐시니 가온대 오 어문(魚門) 삼(三代) 종친(宗親) 신위(神位)라 여시며 좌우의 두 위판(位板)은 거시 업시니 가히 우읍더라 |
길 혹 지나가 쟤 허리의 흰 무명 두고 흰 담마으락이 시니 무른즉 곳 거샹(居喪)을 닙은 쟤라 나 거믄 의복이 평인(平人)과 다이 업며 일이 지나면 이도 벗다 니 연(駭然)더라 |
삼십일 |
미명의 발여하보(沙河堡)의 니니 믈 너븨 너며 리 노하 사을 건너게 엿더라 |
탑보(白塔堡)의 니러 삼신(三司臣)이 가지로 햐쳐여 됴반 탑(白塔)이 길 우편 녀념(閭閻) 뒤 이시니 벽으로 하 닐곱 층이며 여 모히오 층마다 나모 연목(椽木)을 거러 집 지은 모양 치 고 면으로 문을 내여시며 가온대 궁글데 야 밋셔 우러러 보매 막히인 곳이 업니 놉희 십여쟝이 될너라 |
쥬인의 집이 못 졍졔(整齊)고 즙믈(什物)과 긔명(器皿)이 장 빗나며 캉 우 들보의 아희 담 그슬 라시니 그 졔되(制度ㅣ) 체박회 트되 길게 여 밧긔 블근 칠고 과 구름을 그려시며 목판으로 바닥을 글고 가족 노흐로 허리 여 거러시니 아희 나면 이 그 담아 울면 리워 졋을 먹이고 혹 흔득여 달다 더라 |
쥬인이 앏 나아와 친근 의(意思) 뵈며 계집들은 겻 캉의 모히여 문을 라시나 다토와 엿보와 눈으로 로치며 셔로 지져긔니 잇다감 엿보다가 셔로 밀니여 밧그로 나오면 우스며 도혀 슘지라 캉 앏 오륙셰 아희 쥬인을 라 셧거 샹방(上房)의비쟝(裨將) 사이 무 쥬인의게 엇딘 아희뇨 니 쥬인이 졔 아이로라 거 아려 무 네 야얘(爺爺ㅣ) 더 랑냐 네 마매(媽媽ㅣ) 더 랑냐 니 여여[야야] 아비 니미오 마마 어미 니론 말이라 |
아 우며 쥬인이 웃지라 담 지 가져다가 담 혀 쥬며 너의 마마 갓다가 쥬라 니 아희 장 랑 빗치 이셔 바다 가지고 겻 캉문으로 드러 가더니 나와 더 달나 거 쥬어 보내니 쥬인이 우며 해롭지 아녀 더라 |
쥬인이 신 쳥심환(淸心丸)을 어더지라 의(意思ㅣ) 잇거 각각 환을 쥬니 곳 붓을 드러 치샤(致謝)노라 뵈더라 |
큰 리 지나니 아 삼간(三間) 슈문(水門)을 글고 우 좌우로 셕난(石欄)을 둘너시며 셩부(城府)와 아문(衙門)이 업 곳이로 이러니 쇼국(小國)의 규모로 비기지 못너라 |
혼하(渾河)란 믈 니러 어름으로 건너니 야리강(耶里江)이라 니더라 |
믈이쟝산(長白山)으로 려와 셔남으로태(太子河)와 합슈(合水)야뇨하(遼河)로 드러 간다 더라 |
효뫼[](孝廟ㅣ)심양와 계실 예 이 믈 집을 지으시고 머지 아닌 곳의 밧 슈십일(數十日) 경(耕)을셰(世子) 드려 소 심거 관즁(館中)의 게 다 뎐 말이 잇더라 |
이 믈을 지나며 길 거매(車馬ㅣ) 히지 아녀시며 슐위 슈슛대 시러심양으로 가 쟤 만흐니 이 남그로 파 거시라 더라 |
먼니 라보니 셩텹(城堞)이 웅위(雄偉)며 누각이 슈목 이로 은영(隱映)여시며 셔편으로 탑이 이시니 우히 고 둥글며 아 넑고 모지며 다만 두 층이로 놉희 칠팔 장(丈)이나 되고 회로 나 희기 분 트니 그 아 하 졔 지 곳이라 며 겻 묘당(廟堂)이 이시니 븕은 쟝원(墻垣)을 두고 그 뒤 슈삼십보 가셔 아문(衙門)이 이시니 거믄 쇼와 양과 돗치 그 가온대 가득여시니 이 하 졔 젹의 희(犧牲)이라 더라 |
일이 셩밧 큰 졀의 모히여 삼신이 캉 우희 잠간 안니 즁이 차 나오거 각각 쳥심환(淸心丸)을 쥬니라 |
심양은 녯 황도(皇都)라 여 일산(日傘)을 지우고 권마셩(勸馬聲)을 그치니 이 존경하믈 뵈미라 가마 려 을 고 례로 셩문의 드러갈 문의 삼층 누 지어시며 응[옹]셩(甕城)이 잇고 셩을 러 문을 내여시며 셩 쥬회 오리(五里) 남즉 방이 방졍(方正)여 입 구(口) 트며 셩의 인개(人家ㅣ) 일만 오륙쳔이 된다 며 셩 길흔 다 시졍(市井)이라 |
각각 젼(廛) 앏 오륙 쟝 븕은 긔 셰우고 믈화(物貨) 일홈을 긔록여시며 현판을 라 각젼(各廛) 별호(別號) 표여시니 금(金帛)이 찬난고 믈홰(物貨ㅣ) 복쥬(輻輳)니 황홀(恍惚) 영농(玲瓏)여 눈이 크게 이며 입이 닷치여 망연히 스로 일 지 못너라 |
길 구경 쟤 길이 메이여 쟝 오리의 벗첫지라 |
셩(城)의 들 졔 비쟝(裨將)과 역관(譯官)이 동셔 화 두 쥴노 셔시니 비쟝은 벙거지의 군복이오 역관은 다 갓과 텬익(天翼)이라 보 쟤 텬익(天翼) 닙은 이 문직(文職)이라 니 문관(文官)이라 니른 말이오 군복 닙은 이 문[무]직(武職)이라 니 무관(武官)이라 닐은 말이오 무관을 샤라 일니 샤 (字ㅣ) 셰 가지 이 이시니 아국(我國) 의(意思ㅣ)오 하(蝦) (字ㅣ) 한어(漢語)로 샤라 니 이 (字)로 니면 두 나시 압 이시니 젼(前陪)비쟝(裨將) 이 오나롯 모양이란 말이 오놀날 (駭) (字) 샤라 니 이 로 니면 황뎨 앏 시위(侍衛) 무관을 샤라 니 위의(威儀) 가히 무셔오믈 니미오 아 하(下) (字) 샤라 니 이 로 닐으면 무관의 반녈(班列)이 아 잇단 말이라 |
세 (字)의 어 (字ㅣ) 올흔 쥴은 셰히 모나 놀날 (駭) (字) 의(意思ㅣ) 올흔 듯더라 |
셩의 드러 슈보 여 븍으로 골노 드러가 햐쳐 졍니 쥬인의 셩(姓)은쟝개(張哥ㅣ)라호부(戶部)셔반(西班)을 닌다 니 우리나라 셔리(胥吏)튼 구실 일너라 |
심양(瀋陽)은 녯 읍누국(邑婁國)이라 당(唐) 젹의 심(深州ㅣ)라 일고 오(吳) 젹의 흥요군(興遼郡)이라 일고 대명(大明) 홍무(洪武)의 비로소 위(衛) 두엇더니 텬계(天啓) 년간의 한(汗)이뇨동(遼東)으로셔 나아와 이 의 웅거야심양을 곳쳐봉텬부(奉天府)라 고 셩경(盛京)이라 니 뉵부(六部) 초와 두어시나니부(吏部) 관원이 업고 오부(五部)의시랑(侍郞)나와낭즁(郎中)둘을 각각 두고 쟝군(將軍)을 두어 군 지 게 니시임쟝군(時臨將軍)은 곳황뎨의 근족(近族)이오 일홈은임영이라 며봉텬부윤(奉天府尹)과승덕지현(承德知縣)을 두엇시며 궁궐묘(宮闕廟社)의 쟝녀(壯麗)홈과 녀염시(閭閻市肆)의 번셩미연경의 버금이라 햐쳐(下處) 골의 나매 븍으로 여보 가니 길의 큰 문 다시 년여 이시니 문 앏 다 담을 싸하 길흘 리오고 담의 그림을 부쳐시니 이 오부 아문(五部衙門)이오 남편의 아문이 이시니 앏 거믄 문(柵門)을 좌우로 베플고 문의 직희 군(軍士ㅣ) 만흐니 이 쟝군 아문(將軍衙門)이라 슈여 보 여 길 가온대 세 층 집이 이시 졔되(制度ㅣ) 표문(表門)고 장 웃층의 큰 쇠븍을 다라시며 문 밋 무지게문 네흘 내여 사이 왕(往來)게 여시니 이 니론십각(十字閣)이라심양(瀋陽)셩문이 동셔남븍의 각각 두 문이 이시니 합여 여 문이라 통 길이 우믈 졍(井) (字) 치 이시니 남븍 두 길과 샹동문(上東門)과 샹셔문(上西門) 길 어으름의 다십각이 이시니 이곳은 우리나라 죵누 튼지라 슐위와 이 길 힌 며 안즌 쟝와 니 쟝 날이 도록 분 답(沓)니 안즌 쟝 믈화 다 쳠하의 닷케 싸하시며 쳠하의 믈화 모양을 그러 라시니 은푸(銀鋪子)의 남그로 은(銀)을 라시며 바늘 푸의 남그로 바늘을 그러 거럿고 보션과 신을 그려시며 담대와 열구(悅口子) 그슬 그려시며 계집과 아희 그려 문의 븟쳐시니 이 의원의 졔 각각 아 바 표미오 사의 눈 나흘 그려시니 이 안질의 약을 푸(鋪子)가 시부되 보기의 심히 괴이며 니 쟝와 기름 쟤 쇠 울니며 엿 쟈 나모 됫박 치 그러치며 머리 쟈 쇠칼을 울니니 이 튼 형샹을 가히 이긔여 긔록지 못며 의복을 매(賣買) 쟤 의복을 모하 노코 사이 왼손으로 옷깃 들며 올흔 손으로 옷허리 잡고 크게 소여 오 이 옷시 비단은 아모 디방(地方)의셔 나고 기 몃 자오 지은{지은} 공젼(工錢)은 몃 돈이니 갑시은(銀子)몃 냥이 되리라 면 겻 사이 크게 소 야 오 네 말이 올타 람즉 고 사감즉 다 며 옷 븟든 쟤 그 옷 노코 다른 옷 잡아 앗가 치 웨여 외편의 핫다가 올흔 편의 핫다가 긋츨 젹이 업시 날이 도록 이리 니 혹 지 못여 임의 [헤]여진다 니 심히 우음즉 며 푸(鋪子)의 맛당 당(當) (字) 금으로 긧대의 시니 이 젼당 잡 푸라 그 젼당 잡히이며 잡 법이 두 로 긔약(期約)여 니라도 긔약의 어긔면 무르 일이 업다 더라 |
큰 길노 오부(五部) 지나 셔(西)으로 골이 이시니 이곳 대궐(大闕) 잇 곳이라 대궐 졔되(制度ㅣ) 별노 크지 아니고 궐문은 삼문이로 평(平) 집 모양이오 븕은 칠을 여시며 프 기와로 니엇고 문 밧 십여 보 야 홍마목(紅馬木)을 베플고 녑흐로 비 세워 오 친왕(親王)이라 대쇼인원(大小人員)이 다 을 리라 여시며 겻쳥(淸)글로 번역여시니 져의 언문(諺文)이라 일더라 |
삼문을 닷고 밧긔 직희 군(軍士ㅣ) 이셔 사을 금지라 밧그로 놉흔 올나 라보매 표묘(縹緲) 누각이 즁즁(重重)여 일오 혤 길이 업며 규뫼(規模ㅣ) 다 일로 지엇고 월낭(月廊)을 보지 못며 궐문(闕門) 겻 두 층(層) 팔면각(八面閣) 곳이 이시니 쳥황(靑皇) 냥(兩色) 기와 니이고 당즁(當中)여 큰 쇠븍을 라시며 이 집 앏히 이 너고 다 벽돌을 라시며 좌우(左右)의 면각(四面閣) 나식 잇고 녑흐로 여라믄 간(間) 집이 이시니 일 드니 팔면각(八面閣)은 곳한(漢)이 졔쟝(諸將)으로 더브러 일을 의논던 곳이라 만일 군무(軍務事ㅣ) 이신 당즁(當中)의 쇠복[븍]을 치면 셩문(城門) 여의셔 다 븍을 쳐 응니 졔쟝이 듯고 궐하(闕下)의 모히게 더니 이졔 보매 그 형셰(形勢) 샹샹던 것과 방블(彷彿)더라 |
이 골을 지나 로 남으로 향여 남문(南門)의 거의 다니 동편(東便)으로 골이 이시니 골 어귀 셕벽(石壁) 우 삭여 오 고려관(高麗舘)이라 여시니 이리 좃 잠간 드러가 관(舘)이 이시니 가온대 일각(一字閣)을 셰우고 일각(一字閣) 동편(東便)의 각(閣)을 지어시니 다 다 간(間)식이라 이졔 다 퇴락(頹落)기로 소견(所見)이 심히 황냥(荒凉)더라 |
관 밧긔 돌노 우믈이 이시며 관 뒤흐로 슈십 보의 큰 집이 이시니 일홈은경우궁(景祐宮)이라 졔양(制樣)이 굉걸(宏傑)고 어졔비(御製碑) 세워시니 곳슌치(順治) 칠년의 세운 배라 방믈(方物)을 이곳의 더러 두 법이니샹목(生上木)삼 필과대호지(大好紙)이이십 권과다홍 면쥬(綿紬)일 필과쇼호지(小好紙)이쳔 권과졈미(粘米)삼셕(三石) 오두(五斗) 뉵승(六升)이라호부(戶部)관원이 아문(衙門)의 안자 밧 지라샹통(上通事)윤갑죵(尹甲鐘)은 간검(看儉)기로 마두(馬頭)로 더브러 낙후(落後)여 머므니라 |
셰폐셩졀(歲幣聖節) 방믈(方物)을 예셔브터 심양(瀋陽)슐위로 운젼여황셩(皇城)지 니며 오픔(五品) 관원(官員) 사이 녕거(領去)다 더라 |
이날 뉵십 니(里) 니라 |
쥬인의 위인(爲人)이 슌실(淳實)고 가셰(家勢) 요죡(饒足)여 뵈거 무 셔반(西班)이 일삭(一朔) 소식(所食)이 언마나 뇨 니 마다은(銀子)뉵냥과 미(白米) 일뒤(一白斗라ㅣ) 니 은 두(斗)로 셤을 그니 힘이 이셔야 능히 드다 더라 |
밤이 드도록 문 밧긔 쟝 외 쇼 나지라 무니 이곳연오병(燕子午餠) 쟝라 거 사 오라 여 보니 쇼쳔(小錢) 두 푼(分)의 일곱을 쥬지라 극히 흰 로로 새알만치 글고 쇽의 탕 너허 더운 믈의 여 먹은 며 쥬인 졉 이 프로며 븕은 빗치 잇고 혹 궁글며 기롬여 형샹(形象)은 지 아니나 다 밀가의 탕과 슈박 너허 그러시며 연(連)여 입의 들면 졀노 녹 니 기롬의 워 지진 것 트나 셰히 아지 못너라 |
이곳의 쥬뤼[](酒類ㅣ) 심히 만흐니쳥쥬(淸酒)탁쥬(濁酒) 업며황쥬(荒酒)라 거 마시 괴이고국공쥬(司局空酒)포도쥬(葡萄酒)오가피쥬(五加皮株)셔너 가지 극히 됴흔 슐이라 더라 |
무오(戊午) 십이월 초일일 |
평명(平明)의 발(發行)여 동서(東西)십각(十字閣)으로 말암아 셔문(西門)을 나니 놉기 남문(南門)과 트며 밧긔 니문쳐로 지어시니 그 안 묘당(廟堂)이 잇지라 두 쥿대의 긔(旗) 라시니 나흔 써 오 쥭을 먹여 시쥬(施主) 다 여시며 나흔 써 오 만슈무강(萬壽無疆)이라 여시니 이날이 곳 삭일(朔日)이라 긔(旗) 라 부쳐 졔공(提供)다 더라 |
셩 밧긔 나오니 길 혀 길이 진(盡) 듯고 고루각(高樓彩閣)이 왕왕이 슈목(樹木) 이의 표묘(縹緲)히 뵈니 금(金) 칠 쳠하와 븕은 긔동이 빗나 며 길 녑흐로 놉흔 누관(樓舘)이 이시니 밧긔 아로 삭인 담을 둘너시며 문(牌門)을 세워시니 이한(漢)의 원당(願堂)이라 이젼은 (使行)이 로 드러가 구경더니 근(近來)의 심히 금(禁) 고로 보지 못다 며 길 올흔 편 머지 아닌 곳의 평지(平地)의 놉흔 언덕이 삼기고 누론 기와로 니은 집이 은영(隱映)니 이쳥태조(淸太祖)태종(太宗)두 황뎨(皇帝) 늠[능]침(陵寢)이라 셕양(石羊) 셕마(石馬) 셕(石獅子) 댱명등(長明燈)이 의의(依依)히 가히 분변(分辨)너라 |
평디(平地)의 뇽(行龍)야 긔셰(氣勢) 심히 웅장(雄壯)니 픔[풍](風水ㅣ) 됴타 니너라 |
난니보(爛泥堡) 지날 의신뇨동셩(新遼東城)이 먼니 뵈니 흥경(興京)이라 니지라 이곳한(漢)이 쳐음 웅거(雄據)던 곳이라한(漢)의 조(四祖)의 분묘(墳墓)이시니됴조(肇祖)와흥조(興祖)와경조(景祖)와현조(懸祖)능(陵)이라 니한(漢)이 황뎨라 참 후의 네 (代) 츄층[증](追贈)여 이리 일라시며 셩을 고총관관(總管官)이라 벼 두어 직희게 여시니 이곳대명(大明)의 건쥬위(建州衛) 베픈 곳이라심양(瀋陽)셔 여 리 되고 이곳의 냥(兩代) 분묘(墳墓) 잇 고로건륭(乾隆) 뉵십년(六十年)의 믈읫 네 번심양거동(擧動)야 능소(陵所)의 젼(展拜)니 이러모로 궁궐(宮闕)을 여러 번 즁슈(重修)여 빗난 단쳥 새로 지은 것 다 더라 |
한의 원당(願堂)으로븟터 오리(五里) 매 길 우희 언덕의 탑이 이시니 놉기탑보(白塔堡)탑과 방블고 벽으로 하시니 디명(地名)은탑원(塔願)이라 더라 |
십여 리 여 장원교(壯元橋)와 영안교(永安橋) 지나니 좌우로 셕난(石欄)을 베플고 네 가의 셕[](石獅子) 녀시니 졔되(制度ㅣ) 심히 공교(工巧)더라 |
대방신(大方身)이라 곳의 즁화(中火)고 마도교(磨刀橋)의 니니 기 삼뵈(三四百步ㅣ) 넘은지라 지난 바의셔 장 크더라 |
고가(孤家子)의 니니도가(哥)의 집의셔 슉소(宿所)니 이날 팔십 니 니라 |
지나 바의 구경 계집이 눈이 흰의 만코 동(瞳子ㅣ) 흙 븨흰 쟤 만흐니 심히 고이고 발을 동인 쟤 간간(間間)이 이시니 이 당녜(唐女ㅣ)라역관(譯官)이 니 근(近來)한(漢)인과 만(滿)인이 셔로 혼인(婚姻)을 기의 발 동인 계집이 이젼의셔 심히 젹으니 풍쇽(風俗)의 변미 이럿타 더라 |
지나 곳의 사이 만히 모히여 먼 골을 여러 번 라보아 사을 기리 모양이 잇거 무니심양(瀋陽)녜부시랑(禮部侍郞)이 됴졍(朝廷) 례(賀禮)의 참예(參預)기 위여황셩(皇城)의 나아가 고로 참참이 젼령(前陪待令)다 니 젼(前陪) 동개 고 두리 압셔 가니 이 우리나라 법과 더라 |
회령녕(會寧嶺)을 지나모로븟터 즁(行中)역곽[관](譯官)과 쇄마구인(刷馬驅人)이 임의 병든 쟤 만터니 슈일(數日) 후 더옥 심지라 극히 민망더라 |
초이일 |
미명(未明)의 발(發行)여거류하(巨流河)의 니니 쥬류하(周流河)라 일지라 믈이태하(太子河)와혼하(渾河)로 합뉴(合流)니 세 믈이 모히여 바다흐로 드러가 고로 삼차하(三叉河)라 더라 |
믈이 너고 깁흐니 어름이 플니면 로 건넌다 더라 |
믈을 지나 일니(一里) 여 셩이 이시니 놉희봉셩(鳳城)의 밋지 못나 쥬회(周會) 트며 남문(南門)이 믈을 향여 잇고 쵸뤼(譙樓ㅣ) 왕왕히 밧그로 뵈이여 븕고 긴 긔(旗) 셩 우희 시니 므삼 의(意思) 쥴을 모너라 |
슈십니(數十里) 여신민둔(新民屯)의 니니 인가(人家)와 시(市肆) 슈십니의 니어 번열(繁列)여 가히심양(瀋陽)의 비길지라소황긔보(小黃旗堡)장가(張哥)의 집의셔 즁화(中火)니 쥬인이 앏 니러 섯거 나흘 무니 여든 너히라 며 손(子孫)이 언마나 뇨 무니 다 아과 다 손 잇노라 고 쳥심환(淸心丸)을 달나 거 환(丸)을 쥬니라 대져 참(站)의셔 약간 슈작(酬酌)이 이시면 믄득 환약(丸藥)을 구니 심히 괴롭더라 |
예 지나 동븍(東北)을 먼니 라보니 산기이 위이굴곡(逶迤屈曲)여 은은히 바다희 파되(波濤ㅣ) 흉용(洶湧) 모양 트니 이의무려산(醫巫閭山)지(之脈)이라 예셔븟터 여 리 벗쳐시니 븍방(北方) 진산(鎭山)이라 형셰(形勢) 웅장(雄壯)고 봉만(峰巒)이 슈려(秀麗)야 히락 이이락 여산관(山海關)을 지나도록 오히려 궁진(窮盡)치 아니더라 |
긔보(白旗堡)장가(張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팔십오리 니라 |
이날 일긔(日氣) 극한(極寒)이오 대풍(大風)이 죵일(終日) 긋치지 아니니 챠 사의 예 얼골이 얼븕고 나 어름이 엉긔여 보기의 놀랍더라 |
참(站)의 들 예 슐위 슴[스무]남으니 무리지어 마조 오고 슐위의 제[네]다식 시러 오니 이 년년(年年)이븍경(北京)셔 심양(瀋陽)을 보내여 심양(瀋陽) 여러 관원(官員)의 일년 녹봉(祿俸)을 쥬고 은 거영고탑(寧古塔)으로 간다 니령고탑(寧古塔)은 아국(我國) 븍도(北道) 졉계(接界) 고지니 오랑캐 쳐음 근본(根本) 니러난 곳이라 소금을 뫼흘 무엇고 보화(寶貨) 년년(年年)븍경(北京)셔 드려다가 코 쟝군(將軍) 벼을 두어 직희여시니 황뎨(皇帝) 지친(之親)이 아니면 이 벼을 못고 드러가 길이 슈렁이 십니(四十里)가 되니 파[판](板子) 라 통다 니 대개 즁원(中原)의 진텬(眞天子ㅣ) 나면 도로 드러가 굴혈(窟穴)을 삼으려 의(意思ㅣ)라 더라 |
궤(櫃)의은(銀子)오쳔냥식 드럿다 니 궤 슈(櫃數) 이오십이오은(銀子)슈(數) 일이십오만냥이니 뒤 밋쳐 오지 못 슐위 스므남으니라 |
합여 오십 슐위 다 니즁국 믈(財物) 만흔 쥴을 알너라 |
쥬인의 집의 우마(牛馬)와 나귀 여러 필(匹)이오 슐위 두어 짐을 시로며 낫참과 슉참(宿站)의 드 집의 슐위와 우매(牛馬ㅣ) 업 업니 셩의 부요(富饒)홈을 알너라 |
즁(行中)의 병든 사이 낙후(落後)여 약간 됴리(調理) 면 됴흘 나 혼자 려 두기 어렵고 호숑관(護送官)녕숑관(迎送官)이 러지지 못게 니 병이 즁(重)치 아녀도 살기 어려오며 즁(行中) 믈건을 혹 유루(遺漏)여 다가 못여호숑관(護送官)려 자 달나 면 일흔 참(站)의 가 궁극(窮極)히 자 못 엇 일이 업고 뉘 집의셔 일헛노라 면 쥬인이 믈어준다 나 오날 마두(馬頭)의 련과 안치 일코 즈려 되 어셔 일흔 쥴을 몰나 못다 더라 |
초삼일 |
긔보(白旗堡)의셔일판문(一板門)이라 곳이 삼십니(三十里)라 그 동안의 을이 드믈고 빗치 미망(微茫)여 라보매 다만의무려산(醫巫閭山)일(一脈)이 놉흐락 즈락 여 셔븍(西北) 이로 구을너 벗쳐시니 쳡쳡(疊疊) 뫼부리와 즁즁(重重) 바회 왕왕 쳐져 언덕이 되여사[시]니 혹 올연(蔚然)히 놉흐며 혹 평연(平然)히 셔리여 형샹(形象)이 각각 달나 뵈 와 모양이 다르더라 |
도강(渡江) 젼(前)은 눈을 보지 못너니 문(柵門) 이후로 젹셜(積雪)이 길흘 덥허시니 뇌(行路ㅣ) 심히 간관(間關)더니심양(瀋陽)을 지나 이의 니러 간간(間間)이 길을 닷가시니 대개 지월(至月) 념간(念間)의 황손(皇孫)이녜부샹셔(禮部尙書)공부샹셔(工部尙書)로 더브러 황뎨(皇帝) 명(命)을 밧드러 옥텹(玉牒)을심양(瀋陽)의 봉안(奉安)고 슈일(數日) 젼(前)의 도라갓다 니 옥텹(玉牒)은 |
긔(史記) 닷가 옥(玉)을 쟝식(裝飾)여 십년마다 니궁(離宮)과 명산(名山)의 감초와 둔다 더라 |
혹 길 방(四方) 두어 솔바탕 즈음을 을 다흐고 펀펀이 다드마 타작(打作) 마당 튼 곳이 잇거역관(譯官)려 무니 이 황뎨(皇帝)심양(瀋陽)거동(擧動) 의 쥬졍(晝亭) 슉소(宿所) 궁(行宮) 곳 아니면 민가(民家)의 머무 일이 업고 곳 길의 쟝젼(帳殿)을 베퍼 그림 그린 기동과 (彩色) 바람이 홀연이 일워 황뎨 머므 곳을 그라시며 슈가(隨駕) 신하(臣下)와 군(軍士) 다 한(寒)셔 지며 음식은 젼혀 마른 과 실과(實果) 먹으며 혹 길의 솟 거러 밥을 지어 먹으니 대개 군즁(群衆)과 모양이니 이 셜댱(設帳)엿던 곳이라 더라 |
인(下人)은 사 타태평차(太平車)라도 다 두 을 메웟 고로 좌차(坐車)의 메운 거 보면 다 지져괴여 니 하오라 니 됴탓 말이오 오 오문지[적]마당부더[득](吾們的馬當不得)라 니 우리 은 당치 못다 말이라 |
십오리(十五里) 이십니(二十里)식 을 년(連)여 메우니 마을 앏흘 당여 좌차(坐車) 머믈면 남녜(男女ㅣ) 두세 겹으로 싸히여 보지라 하인(下人)이 둘너 믈니면 잠간 흣터지다가 도로 모히니 좌차 안흘 쏘와 보 눈 모양이 극히 우을 젹이 만터라 낫참 젼(前) 을 가노라 젼방(廛房) 앏셔 잠간 머므더니 홀연 풍뉴(風流) 소 나며 이윽여 사은 지젼(紙錢)을 밧드러 앏 잇고 사은 교위[의](交椅)와 탁(卓子) 밧들어 오고 사은 탁자의 왼 돗 담아 엇게의 메고 풍뉴(風流) 네 사이 각각 긔(旗) 가지고 틈틈이 셔시니 손으로 타 거슨금(奚琴)트되 크니현(絃子ㅣ)라 일 거시오 입으로 브 거 피리와 져 트되 모양이 져기 다르더라 |
이 쟝(葬事) 지내 집의셔 믄져 이 초와 졀의 나아가 블공(佛供) 법이라 지폐(紙幣) 흰 됴 오려 등발 치 야 졔(祭) 지낼 젹 노핫다가 졔(祭) 다ㅏ매 오고 지젼(紙錢)이 이시니 됴로 둥글게 돈 치 삭여 남긔 여 발인(發靷) 와 뫼의 졔(祭) 지낼 의 길의셔 니니 이 녜븟터 잇 법이러라 |
이도졍(二道井子)란 곳의 니러 됴반(朝飯)고 칠팔니 지나매신은(神隱寺)라 졀이 이시니 법당(法堂)과 각(行閣)이 표묘(縹緲) 장녀(壯麗)여 밧문이 믈 궁글어 니 업며 이즈음은 셩의 집이 흙으로 우흘 덥허시나 기와로 니으되 다 믈 아니 내고 편게 지어시니 혹 니한(漢)인의 집이 다 이리 니 우히 업믈 유의미라 고 니되뇨동(遼東)의 람이 셰기로 아니 내여 람의 것치이디 아니케 미라 니 분명치 아닌 말이라 대져 그 의(意思) 모너라 |
슈십여 리 지나십니강(十里扛子)의 니매 젹은 언덕이 잇지라 이뇨동(遼東)의 니론 후 쳐음 지나 배라 오리 여 돈(墩臺) 잇고 그 아 기와와 벽돌을 굽 곳이 이시니 흘 파 굴을 글고 그 가온대로셔 기와와 벽돌을 내여 싸흔 거시 뫼 더라 |
황혼(黃昏)의흑산(四黑山)윤가(尹哥)의 집의 슉쇼(宿所)니 좌(座) 쳐음 졍(定)매 풍뉴(風流) 소 담 밧 집의 나거 무니 샹(喪事) 만난 집의셔 됴샹(弔喪) 손이 니면 풍뉴(風流) 초와 망쟈(亡者)의 신령(神靈)을 깃브게 며 됴(弔客)의 슬프믈 위로다 니 그 소 비촉[측]번원(悲側煩寃)여 놉흐락 즈락 며 간간(間間)이 탁탁 여조두(刁斗) 치 소 고 소 히지 아녀 졈졈 희미여 식경(食頃)이 지난 후 니 혹 니 피인(彼人)의 상(喪事)의 풍뉴(風流) 거시 녜(禮) 아니라 여 풍뉴(風流) 아니면 친쳑(親戚)과 이웃이 다 블효(不孝)라 고로 감히 아니 쟤 업다 더라 |
이날 니(百里) 여 슉소(宿所) 졍(定)니 쥬인의 집이 좁고 더러오나 오히려 교위와 챠풍(遮風) 등믈(等物)이 이시니 풍쇽(風俗)을 가히 볼 거시며 캉 아 뵈틀이 이시니 야흐로 바 대포(大布) 거러시니 아국(我國) 칠승(七升) 무명과 트며 뵈틀 졔되(制度ㅣ) 심히 크나 공교(工巧) 의(意思ㅣ) 긔록(記錄)기 어렵고 븍은 심히 쟈근지라 쥬인려 모양을 보자 대 쥬인 나 놈이 즉시 틀의 안자 되 븍을 더지 법이 라 눈이 현란(眩亂)며 벽 우 문 거러시니 졔되(制度ㅣ) 별노 다른 거시 업나 다만 가락이 굵고 우히 치 업더라 |
초일 |
평명(平明)의 발(發行)여양쟝하(羊腸河)의 니니 믈이 심히 너지 아니나 믈이 여러 가닭이 이셔 여름의 믈이 지면 큰 들이 다 기여 로 십여 리 지난 후 비로소 뭇 오른다 더라 |
즁안보(中安堡)의 니러하가(何哥)의 집의 됴반(朝飯)고 쟝 날하개(何哥ㅣ)반젼(盤纏)이 젹다 여 됴희와 붓 달나 고 캉 앏 드러와 쳥니 위인(爲人)이 극히 블냥(不良)고 소견(所見)이 심히 통분(痛忿)더라 |
캉 아 흙 화로(火爐) 노하시니 브으리 좁아 겨유 차관(茶罐)을 노케 여시며 셕탄(石炭)을 픠워시니 셕탄(石炭)이라 거 머지 아닌 뫼희셔 나 첫 번 셔 파내면 거믄 흙 다가 밧긔 나오면 구더 돌과 트니 블을 픠오면 오 사외지 아니코 믈을 리면 더옥 잘 픠니 음식과 캉의 블 여키 다 일노 쓰 곳이 만흐니 심히 종요롭고 사왼 거 믈의 축여 남그로 틀을 라 벽돌 모양 치 박아내여 도로 픠오면 나모슛셔 더 사외니심양(瀋陽)이후 이곳 아니면 블 히기 어려올지라 슈니 안 나모 잇 곳이 업고 여름지의[이] 슈슈 만히 심긔[거] 나모 신(代身)며 밧 조집으로 우마(牛馬)의 냥식(糧食)을 니 지나 밧 길 조와 슈슈 밧긔 다른 거시 업고 간혹 산도 밧치 이시니 산도은 노미라며 면화(棉花) 밧치 심히 드믈게 이시니 이 즁원(中原) 사이 극한(極寒)이라도 옷 둣겁게 닙은 일이 업고 다만 즘의 가족으로 여러 겹을 닙으며 바지 다 겹으로 여시며 간난 셩이 웃옷시 변변치 아닌 쟤 혹 우리나라 여룬 차졉바지만 게 여 닙엇더라 |
십오리 여 븍으로 라보니 뫼들 가온대 혀 나시니 일홈은관명산(觀鳴山)이니 이 의무려산(醫巫閭山)쥴기라 쥴기 남(南)으로 구을너 놉흔 언덕이 되엿고 그 우 졀이 이시니 졔양(制樣)이 긔묘(奇妙)며의무려산(醫巫閭山)이 니즈음니매 젼톄(全體) 가히 짐작지라 크고 웅쟝(雄壯)여 우리나라 일즉 본바로 비길 업더라 |
고가(大古家子)란 곳의 니러황이(黃伊)고여 오 셔븍(西北) 히로 누각(樓閣)이 은영(隱映) 곳이 이곳븍단묘(北端廟)요븍단묘(北端廟)로셔 셔븍(西北) 십니(十里) 지나도화동(桃花洞)이 이시니 산곡이 심슈(深邃)고 쳔셕(泉石)이 긔이(奇異)타 더라 |
광명참의 니러왕가(王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뉵십니 니라 |
쥬인의 집의셔 나귀로 돌을 메여 곡식을 갈고 돌 녑 풍긔(風箕)라 거 노하시니 이 아국(我國)의 곡식 부 키 신으로 쓰 거시라 그 졔도(制度) 두지 모양과 비속[슷]니 밧근 다 널노 막고 그 안 편은 문 모양으로 그러 너허시 넙은 널을 박아 돌니면 람이 나게 고 편은 널 두 닙흘 마조 비슥이 셰워 두 치 다 셔로 거의 다코 가 굼기 길게 잇게 여시 쟈근 손가락 치 드러가게 고 그 구멍 밋트로 남글 셰워 궁글 막아 긴 나모 궤(櫃) 밧그로 나갓지라 곡식(穀食) 갈기 다 후의 삼탐이의 담아 비슥이 세운 널 우 붓고 믄져 문 지 두어 번 틀면 편 터진 셜합 치 그라 드리온 곳으로 람이 나지라 구멍 막은 긴 나모 번 틀면 남기 도라지매 굼기 열녀 우 곡식이 긴 궁그로 드리온 시 흘너 리니 편 람나 곳의 무거온 알곡식은 다 아로 지거 그릇슬 밧쳐 담기이게 고 가야온 겨 바람의 니여 터진 로 블니여 나가니 간편(簡便)고 신속(迅速)되 인력이 바히 드지 아니니 그 니(利) 졔되(制度ㅣ)라 일즉 드니송원(松園)김니되(金履度ㅣ)그시(伯氏)상고[공](相公) 뫼시고 드러 갓다가 이거 보고 긔이(奇異)히 너겨 내여와시 쓰기 로 죵일 면 삼십여 셕(石) 곡식을 다 블지라 아국(我國)의 로 삼십 셕(石) 곡식(穀食)을 엇지 으리오 이러모로 쓸 도혀 다 업다 더라 |
그시 이시니 두지 모양으로 크게 글고 그 안희 네모진 쳬 너코 쳬의 로 그라 쳬 밧그로 나오게 여시니 사이 귀 집고 두 발노 셔로 드면 쳬 스로 브드이져 츠이게 여시니 가로 츠면 로 십여 셕(石)을 츨너라 |
이 참(站)의도역승(驛丞)이 이시니 일년(一年) 소식(小食)이은(銀子)삼십뉵냥과 삼십육셕(三十六石)이오 발마(撥馬) 오십필(五十匹)이 잇다 더라 |
이리로 좃차 십니(十里) 매광녕셩(廣寧城)이 이시니 녀름 (使行)이 만일양쟝하(羊腸河)믈진 만나면 셩(城內)로 좃차 지난다 더라 |
역관(譯官)의게 드니{역관(譯官)의게 드니} 이곳의 마상(馬上才) 계집이 이셔 갑슬 쥬면 본다 더니 다시 드니 이곳은 업고광녕산(廣寧山)아 잇다 더라 |
일즉역관(譯官)이 이셔 대강 드니 계집이 일신(一身)을 희[미] 복(服色)으로 미고 셔셔 창검(槍劍)과 궁시(弓矢) 가지고 혹 셔며 누으며 시 달녀 보암즉 다 더라 |
초오일 |
평명(平明)의 발(發行)여흥뉵졈(興陸店)의 니니 슉참(宿站)의셔 오리(五里)라 인개(人家ㅣ) 즐비(櫛比)여 뉵칠호(六七百戶) 될 듯더라 |
십오리(十五里) 여샹흥졈(上興店)의 다니의무려산(醫巫閭山)이 이즈음셔 동(東)으로 구을너 셔(西)흐로 벗쳐시니 봉만(峰巒)이 하 밧긔 츌몰(出沒)여 바독을 버려 노흔 더라 |
팔니(八里) 지나여양역(礪陽驛)의 니니 인가(人家)와 젼방(廛房)이 가히신민둔(新民屯)의 비기며 이날 댱날이라 거매(車馬ㅣ) 길 메이고 믈홰(物貨ㅣ) 구 치 모히여 길흘 여 나갈 길이 업며 좌우 둘너 보매 별노 긔이(奇異)한 보 업고 잡된 믈건과 졔육(猪肉) 션이 못 슈리(數里) 벗쳐시니 아국(我國)의 큰 쟝과 다미 업더라 |
이곳도 의 여셧 번 쟝이 셔 법이 열흘 안희 년(連) 이틀을 션다 더라 |
이즈음은 샹모(槊毛) 단 마으락이 쓴 사이 젹고 젼혀 담마으락이의 거믄 옷 일신(一身)의 두루고 셔 모양이 거믄 담을 흔 모양 고 계집을 보지 못니 계집이 귀기 그러커니와 가히 남녜(男女ㅣ) 유별(有別)다 더라 |
예셔 됴반(朝飯) 부(副使)로 더브러 캉의 안잣더니 여러 되놈이 캉 문 밧긔 모히여 기우려 보기 닷토거 방 하인(下人)들이 슈슈대로 둘너 헤치며 박의 믈을 려 츠니 대경(大驚)여 놈도 잇고 응연(凝然)이 굿이셔 웃 사도 이시니 지 아닛 쟈 그져기 지각(知覺)이 잇 사이러라 |
삼십여 리 지나오(五臺子)의 니니 이즈음셔븟터 지계(地界牌)라 거시 이시니 우리나라 쟝승과 튼 거시라 그 졔되(制度ㅣ) 셰 문(門) 모양 치 그라시며 가온 문(門)을 놉혀 써 오 |
아모 고을 아모 참(站) 발소라고 외편 문(門)의 써 오 동(東)으로 아모 참(站)이 몃 니(里)라 고 올흔편의 써 오 셔흐로 아모 참(站)이 몃 니(里)라 여시며 혹 젼방(廛房) 바람벽의 동셔남븍(東西南北) 여 리 디명(地名)과 니슈(里數) 써 븟쳐시니 길 가 인(行人)이 번 보매 다 효연(曉然)지라 십여 리 젼븟터 셔븍(西北)으로 뫼히 이셔 놉흐며 즌 뫼부리 지 아니야 형상(形象)이 괴셕(怪石) 트니 갓가히 니매 여라믄 봉만(峰巒)이 펴이여 젼혀 셕산(石山)이라 |
망만보(望巒堡)란 곳이 이 뫼셔 십니(十里) 동안이니 산을 라보 마을이란 말이라 이 뫼흘 지나 오륙니(五六里) 여 슉소(宿所)니 디명(地名)은셕산참(石山站)이오 십삼산(十三山)이라 니 열셰 봉(峯)이라 니른 말이러라 |
뫼기을 지날 이 셕양(夕陽)이 뫼 머금고 희미 안개 하 밧긔 빗최여 더니 흣터져 일조홍광(一條紅光) 반텬(半天)의 덥혀시니 긔이(奇異)더라 |
언덕을 지나매 샹부방(上副房) (行次ㅣ) 오리(五里)나 앏셔지라 가 사이 이 대초씨 셰운 며 이 팟츨 구을니 모양이라 |
홀연(忽然) 슈목(樹木)이 리워 간 곳이 업셔지니 나 동(同行) 사이로 홀연(忽然) 쵸연(悄然) 을 금치 못니 내 뒤흘 좃 쟤 이 모양이러라 |
이번 (使行)의 포(包) 갑시 근년(近年) 이(以來)의 쟝 만흔지라 관역이태평(太平)을 아니 쟤 업며비쟝(裨將)도 만이 타지라역관(譯官)과비쟝(裨將)의 차(車) 탄 쟤 다 내 좌챠(坐車) 뒤흘 니 후거(後車) 슈십승과 죵쟤(從者ㅣ) 슈이라 니지라 사이태평차(太平車) 타시되 우흔 가마 모양이오 비단 휘쟝(揮帳)의 담으로 안흘 막아시며 가온대 삭여 면(四面)의 뉴리 븟치고 금안(金鞍)을 지어 메워시며 탄 사이 쵹농을 잡아 앏 인도고 뒤흘 쟤 칠팔인(七八人)이라 다 쥰마(駿馬) 고 번개 치 녀 동(東)을 향여 지나가니 위의 혁연(赫然)여 인개(人家ㅣ) 비등(比等)니 내 (行色)이 도혀 빗 업지라 마두(馬頭)로 여금 무라 니 종쟤(從者ㅣ) 닐너 오 벼이 야흐로 흑뇽쟝군(黑龍將軍)이니 심양장궁[군](瀋陽將軍)의 아들이라 황셩(皇城)의 공(公事)로 드러왓다가 임소(任所)로 도라간다 니흑뇽강(黑龍江)은녕고탑(寧古塔)디방(地方)이라 요해쳐(要害處)라 더라 |
질 의 길의 열남은 먹은 아 각각 양(羊)을 슈식 모라가되 다만 손의 긴 여 뒤흘 고 양(羊)이 다 머리 이 야 나히 빗 거시 업니 임의 이샹더니 두 아희 함 젼방(廛房)의 나아가 므어 사 먹으매 양이 머므러 가 일이 업더니 아 즉시 나와 므 소 니 이예 각각 졔 쥬인을 와 셔로 셧기지 아니코 도로 앏셔 가니 더옥 긔이(奇異)며심양(瀋陽)이 젼브터 어룬 아희 업시 삼탐이 메고 삷흘 손에 들어 길의 우마(牛馬)의 을 쥬으되 지나 이 을 누면 닷토와 삷흐로 집어 삼탐이의 너흐 들니 일이 업고 마을마다 문밧긔 거을 싸하시니 놉희 여러 자히오 네모히 방졍(方正)여 마을마다 다 모양이라황가(黃哥)의 집의셔 슉소(宿所)다심양(瀋陽)지난 후로븟터 |
참(站) 마다 환약(丸藥)을 구니 구 로 쥬랴면 니우지 못지라 져의 긔이(奇異) 약으로 아 쥴 볼너라 |
초뉵일 |
평명(平明)의 발(發行) 대셜(大雪)이 리고 대풍(大風)이 집을 흔드니 역(行役)이 민망 아니라 이의 니러 샹하(上下)의 병드지 아닌 쟤 업니 실노 민망나 일 업더라 |
발마(撥馬) 고 지나 쟤 이시니 둘은 앏 셔고 둘은 뒤 셔시며 놈이 등의 누른 보로 거 지고 녀 가더니 지 아니코 븬 노 오 거시 네 필(匹)이라 이 참(站)이 멀면 밧고아 가 시브더라 |
이 모양이 별노 쾌(快)치 못니 이 고 엇지 시각(時刻)의 칠십니(七十里) 리오 역참(驛站)마다 발마(發馬) 두어시 큰 참(站)은 오십필(五十匹)식이라 |
년(每年)의심양으로셔 발소(發所)의 슈(數) 좃차 오십필(五十匹) 잇 곳은 아홉필 갑슬 두 필(每匹)의 십오냥식 뎡(定)니 만일 죽고 병든 마(馬) (代)로 사셔 셰우란 법이라 |
역승(驛丞)이 지여 으면 스로 먹고 브죡면 문다 며 역참(驛站)의셔 지나 관원(官員) 졉(待接) 법이 표문(表文)이 이시면 슈(數)로 을 쥬고 음식여 지공(支供) 법은 사 의 은젼(銀大錢) 칠식 러 쥬니 이 십뉵푼이라 |
이 심양(瀋陽)으로셔 미리 쥬 은(銀)이 잇다 더라 |
대릉하보(大淩河堡)의 니러 됴반(朝飯)고 십여 리 야 길희 동비(四同碑)라 비가 이시니 아국(我國) 사이 죵죵 박혀 간다 나 풍셜(風雪)이 오후의 더옥 심여 을 머므지 못고 지나니라 |
양졈왕가(王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오십니 나 역(驛) 마부(馬夫)뎡연(鄭延)이와김슈강(金守强)이 믈고다 사의 (生死ㅣ) 큰 일이라 |
져의 비록 하쳔(下賤)이나 엇지 명(命)이 아니리오마 왕(王事)로 만니(萬里)의 구치(驅馳)야 병이 들매 뉘 졍으로 음식을 권며 풍셜(風雪)이 이러나 뉘 만뉴(挽留)여 됴리(調理)리오 고무친(四顧無親)이오 일신(一身)이 혈혈(孑孑)여 병드러 죽기의 니니 뉘 능히 젼부(傳訃)리오 만리(萬里) 호산(胡山)의 도라가지 못 고혼(孤魂)이 되리니 엇지 참졀(慘絶)치 아니리오 나라히 쥬신 은(銀)이 잇지라 관곽(棺槨)을 초와 죽은 곳의 두엇다가 도라올 의 실어 간다 더라 |
서유문 연행기 무오연행록 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가능합니다.
http://www.davincimap.co.kr/davBase/Source/davSource.jsp?Job=Body&SourID=SOUR00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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